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
“안전벨트 꼭 매고…. 그리고 네가 읽은 책들은 한 권도 빠뜨리지 않고 목록을 만들어 줘. 그래야 엄마도 뒤떨어지지 않지.” 수잔 새런든이 나오는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Anywhere but here)>의 마지막 대사를 외며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고 말 딸과의 이별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었다. 딸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내 슬픔 따위는 저 바다에 던져 버리고 씩씩하게 돌아서리라.
허나, 그 전에 먼저 딸을 두고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후원으로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열리는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딸은 “나도 소설가나 될까?”하고 처음으로 가난한 작가 엄마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동생네에 맡겨질 딸의 학교가 문제였다. 관할 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싱글맘으로 애랑 둘이 살고 있는데 외국에 나가게 됐다, 애가 서울 이모 집에서 교환학생 같은 걸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느냐? 이야기를 들은 남자가 담당자를 바꾸겠다면서 또 다른 남자에게 전화를 넘겨 제가 싱글맘인데요…를 반복하던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관할 교육청은 엄마인 나의 주소를 옮기는 방법밖에 없노라고 했다. 단 하루 주소를 옮기는 편법도 있다지만, 편법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나와 내 딸이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서류로도 떠나고 싶지 않은 이 집은 이혼 후 내가 호주가 되어 일가창립을 한 번지수인 것이다.
반나절을 울고 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생네 관할 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그런데 그곳은 장학사를 비롯한 상담 선생님이 모두 여자였다. 그리고 이런 경우 담임확인서, 재학증명서에 애의 주소만 이모 집으로 옮긴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면 전학가능하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답변을 얻었다. 고맙습니다!
하여, 애는 전학 아닌 전학을 했다. 교복까지 새로 맞추고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르는 딸애의 짐을 싸던 날도 난 울었다. 애가 세상에 나온 후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처음인데, 애 없이 내가 낯선 나라에서 세 달을 어찌 버틸까.
이번 여름 우리 모녀의 북유럽 여행이 주었던 교훈이 있다면, 당신을 믿는다, 였다. 그들은 내가 내미는 유레일패스를 한 번도 펼쳐서 확인하지 않았다. 나도 믿자. 나를, 내 딸을. 애는 씩씩하게 잘 지낼 것이다. 서로를 ‘쇼핑중독자’와 ‘가식덩어리’라고 치고받았던 우리 모녀도 몇 달 떨어져 있노라면 그리움이 바다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는 믿는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엔 나도 애도 한 뼘씩은 성장해 있으리란 걸.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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