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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우리 모녀, 잘 살 수 있다고요

등록 2007-08-06 18:48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

여행이 휴식이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참가하는 데만 의미를 둘 수 없는 운동선수처럼 나 또한 길 위에 서면 더 멀리, 더 많이 돌아다니기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휘몰아친다. 하물며 물가 비싼 유럽에서야! 숙박비를 비롯한 각종 경비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고 있노라면 몸이 다 죽어가도 그날치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찍고 돌아야 한다.

세인트아이브스(St. Ives)라는 곳을 갈 때도 하등 다르지 않았다. 땅끝 마을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해남 어름이라고 내 맘대로 때려잡은 영국 남서쪽 콘월지역을 샅샅이 훑을 참이었다. 하지만 세인트아이브스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을 순례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결국 계획으로 끝났다. 아무리 헤매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이 작은 마을에서, 나흘 동안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던 탓이다.

딸과 나는 세인트아이브스의 아스라한 절벽과 비췻빛 바다를 따라 푸른 초원을 하염없이 걸어다녔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이웃한 아름다운 골목을 지나다녔다.

나이 마흔이 훨씬 넘은 이 펑퍼짐한 중년 아줌마, 우리 땅에선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낯선 땅에만 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뜨뜻한 눈길이 쏟아지는지라 제 주제를 모르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더구나 동양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이 마을에서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분에 넘치는 환영을 받기까지 했으니….

딸의 나이만할 때 입어본 이후 30년 만에 처음 수영복이란 걸 입은 엄마와,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처음 들어가보는 딸은 고운 모래사장 위에서 남들 눈이 걸려 많이도 멈칫거렸더랬다.

“나, 괜찮아? 엄마!”

“엄마, 괜찮니?”


결국은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를 입 밖으로 소리내어 외고서야 우리는 그 맑고 푸른 바다에 몸을 적실 수 있었다. 어찌 됐든 결국 해낸 것이다. 다음날 아침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을 때 길가에 세워진 알림 문구 하나가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에게 제발 먹이를 주지 마세요. 지가 알아서 살게 좀 내버려 두자구요.’ 갈매기도 제가 알아서 잘 산다는데 내가, 우리 모녀가 이 여행을 왜 못해내리. 세상에 쓰러지려 할 때마다, 삶에서 아직도 도대체 두려운 게 뭐가 있니? 라고 내게 소리쳤던 세인트아이브스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기억해내리라.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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