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연예인 엄정화씨가 란제리 사업으로 100억 매출을 냈다는 기사를 보니 묘하게 기쁘다. 나에게 엄정화씨는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녀가 잘되면 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난다. 청순함을 강조하던 데뷔 시절부터 그 누구도 그녀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파격적인 의상과 대담한 가사로 그녀가 9집(한국의 어떤 대중 여가수가 9집까지 앨범을 발매할 만큼 끈질기단 말인가)을 발표했을 때 난 그 기쁨을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여자 아이들에게 마구 토하며 공감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놀라웠다. “너무 나이 들어서 그러면 보기 흉해요, 선생님.” 혹은 “그런 여자 무서워요, 선생님.”
사실 90년대 태어난 아이들이 정화 언니의 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과 내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 허황된 일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인생을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 그런 평가가 주어진다는 것만은 놀라웠다. 사실 내가 더욱 상처받은 것은 그들의 독설이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나는 ‘나이듦’에 대해 실감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훨씬 더 인생을 오래 살아온 분들에겐 우스운 말이겠지만, 세상은 이제 니 인생의 ‘절정’은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때 지난 크리스마스 케익(25일 이후엔 말짱 쓸모없는 것)과 같은 짜증나는 비유를 들지 않아도, 내 여자 친구들은 이제 만날 때마다 자신의 ‘좋은 시절’이 지나갔음을 한탄하고 잔주름이 늘까봐 피부 관리에 엄청난 돈과 열정을 쓰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100년도 산다는데 여성들의 ‘나이듦’에 대해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미 인생의 절정은 꽃다운 20살 초반에 지나가버려 남은 80년의 세월을 불행하게 보내도록 만드는 이 사회의 시스템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소녀들은 역할 모델을 찾을 수 없어 하루하루 ‘늙어’가는 자신을 무서워하고, 자신의 인생을 당당히 설계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나이값 못하고 꼴값한다’라는 꼬리표가 붙여지는 것은 대체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적어도 나는 내 인생의 절정은 내가 죽는 날이라고 생각하련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세월이 주는 경험과 깊이를 마음껏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겠다. 지금 정화 언니의 100억 기사 옆에는 ‘이효리 눈가 주름, 나이는 못 속여’라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떠있다. 남의 주름살에 신경 쓸 시간에 자기 인생들이나 가꾸시길.
우효경/칼럼니스트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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