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용기가 만든 1년]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들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고발에 함께하겠다는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묵인해온 비뚤어진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제는 새로운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미투’에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해 2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연극·뮤지컬 관객 #withyou(위드유)'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마녀’(닉네임)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2010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뒤 그는 변호사 조력 없이 형사재판을 진행했다. 가해자는 유죄를 받았지만 오히려 수년간 명예훼손 등 ‘보복성 고소’를 했다. 이 모든 사건 해결까지 걸린 시간은 꼬박 만 4년. 그는 낯선 용어와 절차를 일일이 공부해가며 지난한 사법처리 과정을 버텼다.
이제 ‘마녀’는 조력자다. 에스엔에스(SNS)를 기반으로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한다. 그의 계정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안내서와도 같다. 주요 성범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판결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풀어 설명한다. 함께 재판을 방청할 ‘방청연대’를 모집하고, 수사나 재판에 피해자의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할 때도 있다. 지난해부턴 전국을 돌며 자신이 겪은 소송 과정과 연대 사례를 소개하는 세미나를 열고 있다. 일종의 ‘실전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함께하겠다”며 연대한 보통의 시민들이 있어서 확산했다. ‘위드유’(With You)란 거대한 흐름의 존재는 이전의 성폭력 고발과 ‘미투’를 구분하는 변곡점이다. 이전에도 개별적으로 피해자와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 흐름이 ‘보통의 시민’ 속으로 확장된 면에서 다르다. 이전부터 활동해온 ‘마녀’도 2018년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했다. “올해는 개인으로 방청연대를 오시는 분들이 확실히 늘었어요. (‘미투’ 이후) 사법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늘어나면서 세미나를 열어달라는 요청도 많이 오고요.” 그는 지난해 한달 평균 6∼8차례 공판에 참석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전국미투생존자연대’도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직접 조력자로 나선 사례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와 강민주 전 피디 등 ‘미투’ 고발자들과 ‘위드유’ 뜻을 나타낸 시민들이 연대해 모였다. 발족 뒤 알음알음 찾아온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진술서 작성법, 직장 내 성희롱 대응법,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법 등을 알리고 공유한다. 때론 경험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치유하고 또 치유받는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여성들이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언론 등에 경고를 보내은 의미의 노란색 손팻말을 들고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원, 서명, 방청연대, 탄원서… ‘위드유’ 방법은 다양해졌다. 다음달 1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시민들이 ‘피고인 안희정’에게 묻고 싶은 점을 직접 모았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질문 157건을 받았다고 밝혔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했습니까?” “떳떳하다면 왜 휴대전화를 폐기했나요?” 등이다. 항소심 첫 공판 준비기일인 지난해 11월29일에는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1심 무죄 판결이 나던 그날도 상사의 성희롱을 참으며 점심밥을 삼켜야 했던 나는 ‘보통의 김지은’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들은 ‘김지은’의 모습으로 살아가곤 한다.” 성폭력이 묵인되던 시대를 바꿔내겠다고, ‘보통의 김지은’들은 말했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성폭력이 언제든 내 문제가 될 수 있고, 내가 같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를 ‘위드유’의 힘으로 꼽았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