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은 어디에나 있다]
④남겨진 과제 : 좌담
④남겨진 과제 : 좌담
(왼쪽부터) 서혜진 변호사(김지은 변호인단), 성지수 연출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권수현 여성학자가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위력은 어디에나 있다’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권수현 여성학자
50대이상 남성이 압도적 다수
권력독점 시스템 그대로 두고선
성폭력 반복, 편파성 해소 안돼
어느 집단이든 다양성 보장돼야
권력독점 시스템 그대로 두고선
성폭력 반복, 편파성 해소 안돼
어느 집단이든 다양성 보장돼야
“권력 배분의 다양성, 약자의 생존권 강화해야” ―권력형 성폭력이 반복되는 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권수현(이하 권) 권력 집단의 인적 구성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성폭력 사건을 일으킨 지자체장들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50대 이상의 남성이 압도적 다수다. 얼마나 다양한 시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느냐라는 측면에서, 편파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로 ‘혁신 티에프(TF)’를 꾸리고 당내 기득권 세력이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혜진(이하 서) 권력의 폐쇄성도 문제다. 폐쇄적인 집단에선 사람들의 분노가 어떤 메시지인지조차 모른다. (성폭력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이 시대에 뒤처진 기관이 되지 않으려면, 판결문 공개 등을 통해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에선 2016년부터 권력형 성폭력 고발이 있었다.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성지수(이하 성) 각종 위원회 구성의 다양성을 고민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비상임위원 후보를 추린 뒤에 검토를 요청했는데, 후보 전원이 50대 남성이더라. 성별을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한다는 관련 시행령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에 항의했고, 이후 성별과 연령이 다양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올해 ‘연극의 해’ 행사 집행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청년, 여성, 퀴어가 다양하게 포함됐다. ️권 스포츠 분야 성폭력 피해자를 인터뷰해보면, 여성의 경력은 선수에서 끝나고 남성은 감독까지 한다.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데, 이는 모든 분야가 똑같다. 정치권에서도 여성 의원을 공천할 때 “최소 30%는 돼야 한다”는 기준을 “최대치가 30%”라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 집단이든지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피해자를 향해 연대의 손길을 건넨다.’ 책 <김지은입니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이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의 강을 건너온 김지은씨였기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짧은 글을 부탁했다. 김지은씨는 직접 손으로 쓴 글과 함께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계실 피해자분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이 전해지길 소망한다”는 뜻을 <한겨레>에 보내주었다.
서혜진 변호사
위력에 의한 성폭력 분명한데도
유명인 아니면 기소조차 어려워
폭행·협박 중심 현행 성폭력 개념
피해자의 동의 여부 중심 바꿔야
유명인 아니면 기소조차 어려워
폭행·협박 중심 현행 성폭력 개념
피해자의 동의 여부 중심 바꿔야
성지수 연극연출가
월 70만원씩 ‘생존기반’ 생기니
밥벌이 탈피, 성폭력문제 활동
참지않는 ‘연대와 공감’ 늘어도
결정권 쥔 기득권층 안 변해
밥벌이 탈피, 성폭력문제 활동
참지않는 ‘연대와 공감’ 늘어도
결정권 쥔 기득권층 안 변해
“‘미투’ 이후 ‘위드유’ 목소리 늘어난 점은 확실한 변화” 이들은 한국 사회가 ‘미투’(Me Too)를 겪으며 확실하게 변화한 지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와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위드유’(With You)가 늘었다는 점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해시태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고,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가 쓴 책 <김지은입니다>를 사는 움직임이 확산한 점 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8년 ‘미투’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권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조사할 때 종종 자문하러 가는데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다. 예전엔 피해 당사자들조차 자신이 겪은 일을 진술하는 걸 힘들어했다. 내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20~30대 여성들 가운데 ‘총대를 메고’ 참고인 진술을 해주는 사람이 늘었다. 자신이 비정규직이더라도, 가해자가 자신의 직속 상사여도 목격자로서 용기를 내서 진술하는 거다. ️서 형사 절차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피해자가 진술할 때 가해자와 직접 마주해야 하는 공간이 없어졌고, 피해자들이 어떻게 진술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묻기도 한다. 사실 성폭력은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문제다.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영이 재배치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변화의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다. ️성 이번 일을 겪으며 하나 확실하게 느낀 건 ‘대의를 말하면서 다른 존재의 일상을 착취하는 건 안 된다’라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그 상황이 힘들고 아프고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거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이를 인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결정권자는 아니라는 점, 기득권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_______
“‘폭행·협박’만을 구성 요건으로 하는 성폭력 개념 바꿔야”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확실해도, 가해자가 유명인이 아니라면 기소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급 직원이 상급자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보낸 이모티콘을 근거로 들며 ‘피해-가해 관계’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곰 두 마리가 포옹하는 이모티콘을 보낸 경위를 분석하는 의견서까지 쓴 적도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위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행사되는지’ 그 맥락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모티콘 하나에만 집착하는 거다. ‘폭행·협박’만을 구성 요건으로 하는 현행 성폭력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인식 변화도 어렵다. ️성 1990년대생인데, 우리는 세월호와 미투를 겪은 세대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자연스레 인지하고, 내 경험이 발화되는 순간을 통해 연대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목소리가 효능감 있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면 좋겠는데, 어렵다. ️권 가장 도움을 기대했던 사람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며 상처받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많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약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상상하고 헤아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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