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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여성

“그럼에도 같이 살아내요”…‘조용한 학살’ 그 뒤

등록 :2020-11-20 19:47수정 :2020-12-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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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젠더미디어 <슬랩> 한 장면.
젠더미디어 <슬랩> 한 장면.

이번 국정감사 때 보건복지부가 여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종합하면, 코로나19가 덮친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자살을 시도한 사람 3명 중 1명은 20대 여성이었습니다. 지난 1~6월 20대 여성 자살자 수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견줘 43%나 늘었습니다. 20대 여성의 자살 상담 건수, 자살 시도율, 자살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한동안 이어졌죠.

안녕하세요. 디지털영상국에서 젠더 미디어 <슬랩>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이유정입니다. 저는 젊은 여성들의 자살에 관한 통계를 보고 이 여성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한 개인의 자살은 우리가 일일이 알 수 없는 저마다의 개인적 사정과 다른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늘어났다면 어떤 사회적 요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을까요.

지난 상반기 여성 자살률과 나란히 악화된 지표가 또 있습니다. 통계청 ‘고용 동향’을 보면, 코로나19 사태 직후 고용 타격이 심했던 3월과 4월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모든 연령, 계층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경제위기 때 여성 고용이 줄어드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 코로나 위기에서도 역시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는 세대의 여성들이 가장 먼저 밀려난 것입니다.

현재 20대 여성의 자살사망률은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자살률을 분석해 지난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지금 20대인 1996년생 여성의 자살률은 1951년생의 20대 시절보다 7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1982년생 여성은 1951년생의 약 5배, 1986년생 여성은 6배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감정적이고 의지가 약하다’거나 ‘20대는 원래 불안정한 시기’라는 환원론적인 통념은 결코 이 문제를 푸는 데 해법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20대 여성의 자살 문제에 코로나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처한 독특한 사회경제적 환경의 문제인지 아직은 누구도 쉽게 결론 낼 수 없습니다.

어쩌면 20대 여성의 높은 자살률은 이들이 놓인 사회적 위치와 그로 인한 무력감을 보여주는 가장 사실적인 지표인지도 모릅니다. 또래의 죽음을 목격하며 서로가 함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우려하면서도, 적당한 때가 되면 스위스에 안락사하러 갈 돈을 미리 모으자고 얘기하는 세대. 저와 제 친구들이 속한 90년대생 여성들에게 왜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일까요?

이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먼저 문제를 문제라고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통계청은 지난해 발표한 ‘장래인구 특별추계’에서 90년대생 여성들이 주 출산 연령층인 30대에 진입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국가가 90년대생 여성들을 ‘저출산의 희망’으로 보고 헛된 기대를 품는 동안, 정작 당사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하게 서 있었습니다. 여성을 여전히 ‘출산의 도구’로만 보는 이 납작한 시선은 20대 여성들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미리 감지해내지 못했습니다.

90년대생은 성비 불균형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합니다. 90년생의 출생 성비(여자아이 100명당 남자아이 수)는 116.5명입니다. 성감별이 가능해지면서 출생의 기회가 남성에게 선별적으로 훨씬 더 많이 부여됐다는 뜻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시절, 그 가운데 태어난 90년대생 여성들은 비극적이게도 자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이 문제를 다룬 영상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가 나간 뒤, 댓글에는 충격적이고 놀랍다는 반응부터 죽음을 결심했던 순간의 고백까지 1천개가 넘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같이 살아보자”며 건네는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가 가장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보다 훨씬 높다’는 오래된 현실을 외면한 채 20대 여성 자살률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들면서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작은 단순히 누가 더 힘드냐는 식의 ‘대결’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20대 여성 자살자가 최근 급속도로 늘었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금 눈여겨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자는 의미에서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20대 여성 자살의 급증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흐름입니다. 아직도 관련 지표와 통계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아지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도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신호가 가진 의미를 더 깊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절망의 한가운데에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이 더는 ‘사라지지’ 않고 함께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위태로운 세계에서 우리 모두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유정 영상제작부 시사제작팀 피디 d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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