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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착취범에 ‘징역 40년’, 추적과 연대가 변화를 만들었다

등록 2020-11-26 11:30수정 2020-11-26 15:03

시위, 재판 방청 등 이어지자 반응한 한국사회
끈질긴 요구가 법과 제도의 변화까지 이끌어
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집회가 지난 7월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렸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집회가 지난 7월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렸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에게 1심에서 징역 40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조씨가 지난 3월 경찰에 붙잡힌 지 9개월 만이다. 대학생 두 명으로 이뤄진 ‘추적단 불꽃’의 취재로 세상에 드러난 ‘텔레그램 성착취’는 디지털 성범죄에 무감하던 한국사회를 흔들었다. 조씨 검거 뒤 9개월 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비로소 하나의 범죄로 눈 앞에 드러났고, 사회는 늦었지만 조금씩 반응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분노한 이들의 추적과 연대가 만들어낸 변화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연대와 감시는 뜨겁고 동시에 꾸준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모인 수십명의 여성들은 지난 3월부터 수개월 동안 서울·수원·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텔레그램 엔(n)번방 관련 재판을 직접 방청하고, 후기를 공유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과 ‘추적단 불꽃’은 시민 7509명을 상대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설문조사 벌였다. ‘사법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응답자 대다수의 견해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 엔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 ‘eNd’는 ‘리셋’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받아 최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는 2만장을, 서울중앙지법에는 8만장을 전달했다.

활동가들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 실태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판사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지난 5월 대법원 산하 젠더법연구회와 사법연수원은 법관 전문분야 연수의 강연자로 ‘리셋’,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의 활동가들을 초청했다. 42명의 판사 앞에 선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 가해 유형과 수사·처벌 한계에 대해 강의하고 판사들과 2시간 넘게 토론을 벌였다.

끈질긴 이들의 노력에 한국사회는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국회는 지난 4월29일 ‘엔번방 사건 재발방지법’이라 불리는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켰다. 이날 법안 통과로 불법 촬영물 반포·판매·임대·제공만 처벌하던 성폭력처벌법은 불법 촬영물의 소지와 시청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또 본인이 직접 촬영한 영상물이라도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유포하면 처벌할 수 있게 한 규정도 명확해졌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 기준은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높아졌고, 강간·유사강간을 계획한 사람도 예비·음모죄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됐다.

입법부에 이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공범’이라 비판받던 사법부도 조금씩 반응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는 지난 9월15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2차례 이상 조직적으로 제작한 범죄에 최대 징역 29년3개월을 선고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양형기준안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기본 양형을 징역 5년∼9년형으로 상향했고, 특별가중인자도 새롭게 정비했다. 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영리 목적으로 여러 차례 판매한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 징역 27년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2017년 아동 성착취물 제작 등 사건의 1심 선고 유형의 38.5%가 벌금형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작지만 중요한 진전이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연대와 노력은 이제 시작 단계다.

법원은 지난 12일 엔번방에 유포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2000여개를 구매한 2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올해 상반기 군 검찰의 디지털 성범죄 기소율은 36%에 그쳤다.

활동가들은 여전히 양형기준에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와 ‘통신 매체 이용 음란행위’의 최소 형량이 4개월에 불과한 점도 한계로 꼽는다. 조씨가 선고받은 40년형이 연대와 추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21>은 그동안 밝혀진 디지털 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저장할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아카이브를 운영 중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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