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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특별페이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지난 10월15일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하다고 결정했는데도,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시민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6시간15분의 이어 말하기에는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직접 나서 또는 영상으로 또는 편지로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말했습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낙태죄 폐지’ 페이지에 이어 싣습니다.
자료 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목소리 5: 발양
안녕하세요, 서울에 사는 시민 중 한명입니다. 여아 낙태가 극심했던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 그 중 저는 90년도 여자 백말띠로 태어났습니다. 90년대 백말띠 여아들은 드세다는 미신이 강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이 “이 반은 특이하게 여자애들이 더 많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그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90년생 여자애들이 적어서 남자애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여아의 성비가 더 낮다는 이면에 여아 살해 역사는 잘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한국사회의 여아 낙태 역사를 알게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들을 낳기 위해 줄줄이 여자를 낳았다. 할머니한테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하다고 구박했다. 할아버지가 나는 미워하는데 오빠나 남동생은 예뻐한다. 이런 말을 여자인 친구들로부터 듣고는 했습니다. 중학생 때 제 친구는 언니가 셋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넷째, 막내였습니다. 세 언니를 낳고 딸을 더 낳아서 두 명은 입양보내게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어머니께서 몇 차례 낙태수술을 경험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뱃속의 태아가 여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가 셋째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의아했는데 친해지고 나서 이야기해줬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성교육을 받았습니다. 낙태수술 비디오라고 알려진 것을 수업시간에 보았습니다. 3교시였습니다. 선생님은 밥먹기 전에 이런 거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반 학생들은 모두 구역질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또래친구들처럼 역겨워해야하는 것인지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고민됐습니다. 한번은 세 달째 생리가 나오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성관계는 없었지만 임신을 하면 생리가 멈춘다고만 배웠던 저는, 어린 나이에 수영수업을 하다가 임신이 된 것인지,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임신을 한 건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엄마에게 이것을 얘기했지만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배를 가격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생리를 하게 되었고 그때야 불안을 내려놨습니다. 여기까지 저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주변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들, 10대 초중반 제가 임신으로 착각하고 스스로의 배를 가격한 것은 지금 생각하니 너무 슬픕니다. 여성들은 어린시절부터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받은 이야기, 어머니의 낙태 경험, 주변인의 낙태 경험, 또 임신에 대한 불안을 듣습니다. 어린 남자아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을 것들을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겪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여자들 적어 결혼할 사람이 없다, 이 반은 여자들이 더 많다는 교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들을 향한 혐오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낙태들, 이 사이에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에 갔습니까. 국가가 주도하여 두 아이만 기르자, 한 아이만 낳아 잘 기르자 했고 그리고 여아 낙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출산의 시대에 접어들자 국가는 다시 여성에게 또다른 족쇄를 채웁니다.
여성의 몸은 시대에 따라 국가가 통제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원할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낳을 권리, 아픈 아이를 낳을 권리, 또 낳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생명경시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할 것들을 고민해야합니다. 폭력적인 남성 파트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겪어서, 자녀계획 때문에, 또는 진로 때문에 여성들은 임신중단을 선택합니다. 과거 국가는 여아 낙태의 역사에 눈을 감았고, 아들을 낳지 못해 윗세대의 할머니·어머니는 천대 받으며 낙태를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아야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태어난 지금의 20~30대에게는 출산하지 않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또 낙태는 죄라고 합니다. 국가는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숨 쉬는 사람부터 우선해야 합니다. 팔자 드센 90년생 백말띠인 저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해 드세게 싸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