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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목소리,들 6] 낙태죄가 남은 채 ‘안전한 삶’은 없다

등록 2020-12-24 02:41수정 2021-05-13 15:19

내 삶을 위한 선택에 돌아오는 건 비난과 낙인
국가의 여성에 대한 태도는 ‘생명권’ 중시와 거리 멀어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바로가기 : <한겨레> 낙태죄 폐지 특별페이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지난 10월15일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하다고 결정했는데도,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시민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6시간15분의 이어 말하기에는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직접 나서 또는 영상으로 또는 편지로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말했습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낙태죄 폐지’ 페이지에 이어 싣습니다.

자료 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목소리 6: 모리

저는 낙태죄 폐지 이슈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 하고, 또 세상 사람들 진짜 저 빼고 다 읽은 거 같은 <배틀그라운드>도 아직 안 읽었고요. 제 얘기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사탕을 나눠줬어요. 봉투도 핑크색이었고 공짜로 나눠주고 먹으면 된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이름이 순결캔디였어요. 이삼일인가 지났는데 학교에 소문이 돈 거예요. 그 사탕안에 정액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제 공짜라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날 이후로 순결이란 단어가 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소설을 보다가도 순결이 나오면 덮고 순결이라는 단어가 역하다고 생각했어요.

낙태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게 시작 한 거 같아요. 중학교 때 선생님이 낙태 비디오라는 걸 보여주면서 “여자애들은 싸게 굴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낙태를 하게 된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생명은 정말 소중하다는 얘기를 했어요. 근데 그 비디오의 다른 부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손바닥 위에 아기의 잘린 발을 올려놨던 그 이미지가 기억이 나거든요. 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면서 되게 역한 느낌이 있어요. 근데 이제 이게 낙태죄 자체에 대한 역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이미지가 저에게 주는 역한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순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처럼 역한 느낌을 가지고있고 그게 어떤 죄책감이나 불편함으로 있는 거 같았어요.

이제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고,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는 저한테 성관계를 요구하는데 딱 한 가지 조건을 바랐거든요. 너는 콘돔을 써야되고 나는 피임약을 먹는다. 저는 그렇게 하면 굉장히 현명한 거라고 생각을 했고 또 그렇게 하면 당연히 원치 않는 임신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섹스를 했는데 그 다음 달에 생리를 안 했어요. 근데 이게 피임약 부작용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병원에 갔어요. 피임약을 먹었고 섹스를 했는데 생리를 안한다. 그러니까 의사가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초음파 검사를 하겠대요. 하지만 저는 근데 피임약도 먹었고 콘돔 썼으니 가능성이 없다. 근데 의사는 분명히 가능성 있으니 검사해야한다고 하니 이제 너무 떨리는 거예요. 다행히 그때 검사했을 때 임신 가능성이 없다고 나왔지만 밖에 나와서 당시 남자친구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더니 카톡으로 딱 답장 ‘오진잼’이라고 온 거예요. 엄청 싸웠어요. 그때 내가 혹시 임신이면 나는 경제적 능력도 없고 내 인생의 다른 길은 진짜 다 사라져 버릴 텐데 그게 농담할 일이냐 그렇게 한번 싸우고 나서야, 이게 내 몸이고 이게 정말 내가 책임져야 되는 일일 수 있고, 정말 그 사건과 엄청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조차도 나만큼 그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게 정말 나의 문제구나, 내가 모든 그 비난과 역겹다고 느끼는 이미지의 순간에 나 혼자 서야 되는 거구나’라고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웃긴 표현일 수 있지만 이성애 안에서 관행적인 연애를 하다보면 그 100%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수렁에 빠져드는 거 같아요. 제가 뭐 페미니즘을 접하고 데이트폭력이란 언어를 얻기 전에도 사소한 싸움은 섹스를 하면 풀린다는 사람, 호기심에 콘돔 없이 넣어봤다는 사람, 섹스가 없으면 연애관계 유지가 힘들 수 있는데 나는 참을 수 있지만 그거는 정말 참는거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불안하잖아요. 임신여부를 정말 내가 완전히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운을 믿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까 생각하면 어떤 가정을 꾸릴까 보다 어떤 일을 하게 될 걸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내 삶의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싸보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결국 국가가 생각하는 어떤 순결한 삶에서 빠져나오면 국가가 나를 죄를 짓는 사람으로, 범죄자로 규정하려고 있는 상황에서 내 삶은 절대 안전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여자에게 어떤 삶의 방향을 정해 놓고 그 바운더리 밖을 넘어가는 것은 국가가 허락하지 않겠다는 메시지 자체가 여성을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살고 또 자기 삶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는 게 아닌 거잖아요. 그리고 분명 생명권이 그렇게 중요하고 침해할 수 없는 가치라면 서로 다른 두 생명을 두고 저울질하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어야 하는데, 근데 여성의 삶을 국가의 필요에 따라서 어떤 때는 애를 덜 낳아야 하는 몸이고 어떤 때는 정말 애를 갖다 심어서 길러야 되는 배양지로 여겨요.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일단 생명권이 중요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국가가 임신중단을 허락할 수 있는 위치에 서려고 한다면 내가 임신 가능성 있는 장기를 몸 안에 가지고 있는 한, 내 삶의 일부분을 국가가 허락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는 것이고 결국 저는 국가가 그어 둔 선 안에서 사육당하는 도구 일 것 같다, 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국가는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국가가 허가할 수 있는 삶의 형태의 범위를 정해둔다는 것, 그 자체가 여성의 삶 전체를 모독하고 있는 일이고, 여성의 삶을 존엄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낙태죄는 여성의 대한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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