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추억은 어릴 적 서울 소공동의 백화점 앞 풍경과 항상 세트로 소환된다. 노점상에서 파는 바나나 한 개와 마론인형 옷 한 개의 가격이 1000원으로 같았다. 짜장면 한 그릇이 600원 할 때다. 8살이었던 나를 매번 심각한 선택의 고민에 빠뜨렸던 그 바나나가 이젠 너무 흔하다. 심지어 국산 바나나도 꽤 많이 보인다.
국산 바나나가 제철을 맞았다. 제주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한 바나나는 이제 고창, 산청 등으로 산지를 넓혔다. 스콜 같은 소나기에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날씨를 보면 한국에서의 바나나 재배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산 바나나는 유기농 또는 친환경 농산물이다. 탄소 발자국을 길게 남기는 수입 바나나의 단점도 극복된다.
바나나는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후숙해 먹는 과일이다. 대부분 샛노란 바나나를 선호하지만 제일 맛있는 시기는 의외로 검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할 때다. 그래서 바나나를 살 땐 언제 먹을지 고려해 사는 게 좋다. 바로 먹는다면 검은 반점이 몇 개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하루 이틀 두고 먹는다면 꼭지가 초록색이고 몸통은 노란색인 것이 좋다. 집에서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바나나를 옷걸이에 매달아두자. 바닥에 닿아 물러지는 면적이 적어져 확실히 더 오래간다. 냉장고는 금물. 냉장고에 들어가면 냉해를 입어 상하고 검게 변하게 된다.
바나나를 색다르게 먹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과육을 큼직하게 자른 뒤 햇양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다진 마늘, 식초, 설탕, 까나리액젓, 고춧가루를 더해 살살 버무리면 달콤 새콤 매콤한 바나나 겉절이가 완성된다. 근사한 동남아 레스토랑 같은 느낌을 내고 싶을 땐 바나나 튀김이다. 3등분한 바나나에 밀가루와 맥주를 섞은 반죽을 입혀 기름에 튀긴다. 그 위에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리고 크림치즈, 블루베리 등과 함께 먹으면 열대의 나라로 순간이동 완료!
너무 물러버린 바나나는 냉동실에 넣었다가 우유와 땅콩버터를 같이 넣고 믹서기에 갈아 피넛버터 바나나 셰이크를 만들어 먹으면 된다.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 할머니의 레시피다.
바나나는 1930년대에 유행병이 돌며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병충해에 강한 종자가 개발되며 식탁에 남았다. 최근 또다시 바나나 감염병에 따른 멸종설이 떠도는데 이번에도 과학의 힘으로 이겨내길 바라 본다. 커다란 바나나 한 송이에 단돈 몇천원. 이런 행운의 시간을 좀 더 누릴 수 있기를! 홍신애(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