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과 잣 소스를 곁들인 새우구이. 홍신애 제공
새우 껍질 쉽게 까는 법이 있다. 슬쩍 삶아 건진 새우는 찬물에 헹구면 맛이 없다. 최대한 물에 닿지 않은 상태로 한김 식혀 온도를 낮추고 대가리를 비틀어 뗀다. 그리고 배 쪽을 눈앞으로 펼쳐 양쪽 다리의 가운데를 손톱 끝으로 콕 찔러 살짝 뜯은 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번에 쭉 잡아 뜯어 내린다. 엄지손가락을 그 틈에 놓고 새우의 등 쪽으로 밀어 넣으면 살이 쏙 발라진다.
이맘때를 대하철이라고 다들 말한다. 서해안으로 달려가 대하 소금구이를 먹는 철. 전어에 이어 대하 이야기가 나오면 완연한 가을이다. 대부분 서해와 남해에 서식하는 대하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15㎝ 이상 되는 큰 새우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새우 중 가장 크기가 커 ‘왕새우’라고도 한다. 보리새우과 갑각류의 한 종류인 대하는 일반적으로 많이 수입해 먹는 흰다리새우와는 전혀 다른 품종이다. 흰다리새우는 크기가 10㎝ 정도로 중하라고 불린다. 흰다리새우는 양식이 가능해 대량 유통되지만 대하는 자연산뿐이고 어획량도 적다. 대하, 중하라는 이름 때문에 같은 새우를 크기에 따라 구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를 악용해 대하 축제장 등에서 흰다리새우를 대하로 속여 파는 일도 흔하다. 둘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뿔이다. 대하는 이마의 뿔이 입 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와 있다. 흰다리새우는 뿔이 짧다.
대하는 가을에 많이 잡히고 양식 흰다리새우라도 가을바람 불기 시작하는 이즈음 더 맛이 든다. 대하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새우의 탱글한 속살은 씹는 맛이 특히 좋다. 덕분에 셰프들에게도 늘 사랑받는 식재료다. 요리하며 벗겨낸 새우 껍질은 국물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영양가도 많다. 새우 속살은 여러 요리에 다양하게 쓰이지만 특히 마늘과 잘 어울려서 한식 주재료로 이만한 것이 없다. 껍질을 벗겨 다진 마늘과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에 버무렸다가 그대로 볶아 먹으면 그만이다. 새우와 마늘만으로도 사실 충분하지만 여기에 고춧가루나 고추장의 자연스러운 매운맛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 된다. 요리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만 기억하면 최고의 새우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섞어 지퍼백에 양념한 새우를 냉장 보관하거나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캠핑이나 파티 때 구워 먹어보자.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우가 많다면 살만 대충 다진 후 다시 뭉쳐 돈가스처럼 만들어도 좋다. 새우살끼리 잘 엉겨 붙지 않으면 약간의 밀가루나 전분을 더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사 먹는 새우버거의 패티도 실제 새우는 30~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분과 명태살 으깬 것 등이 들어있다. 어묵도 주인공인 생선살 비중이 적은데 새우는 향이 강해 조금만 들어가도 마치 주재료 같은 존재감을 보인다. 극소량의 새우와 새우 향이 들어갔을 뿐이지만 전 국민의 간식이요, 갈매기들조차 환장하고 달려드는 새우깡을 떠올려보라.
대하 외에도 머리가 부채처럼 펼쳐진 부채새우, 머리가 딱딱하고 집게발이 달린 가시발새우(일명 딱새우), 시원한 국물 요리에 제격인 민물새우, 회로 먹으면 최고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꽃새우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먹을 수 있는 새우 종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조건 크고 살이 많은 새우를 선호하기보다 때와 기호에 맞게 다양한 새우를 소비하는 문화도 생기는 것 같아 반갑다.
십여년 전 몽골에 일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귀한 손님이 왔다고 내어준 음식이 한국산 삶은 새우였다. 하나하나 까서 접시에 올려주는 손길이 감동적이었는데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라 새우가 귀한 음식이라고 했다. 사실 냉동실에 오래 있었던 평범한 새우 맛일 뿐이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더해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식이 되었다. 진한 새우 향기는 때로 오랜 여운을 남긴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한국의 짧은 가을과 어쩌면 멋진 대비를 이루는 맛 아닐까.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