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생태계라는 것이 있다. 생태계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작은 생태계를 말한다. 베란다의 구석, 화분과 화분 사이의 작은 곳에서 미물들이 아옹다옹 쿵작쿵작 살아간다.
식문화에도 미소생태계가 있다. 일반인들과 다른 식단을 지키며 살아가는 비건들이다. 이들도 고깃집과 고깃집 사이에서 아옹다옹 살아간다.
이러한 비건 미소생태계를 유지하는 미소서식지를 소개한다. 바로 동네 곳곳에 자리 잡은 편의점이다. 많은 비건이 건강보다는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많이 하기 때문에 건강은 뒷전인 ‘정크 비건’이 되기에 십상이다. 정크 비건에게 편의점은 비건 제품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안식처다.
처음 비건을 시작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주 가는 김밥집 사장님에게 “사장님, 저 완전채식 시작했어요. 김밥에 햄, 달걀 빼주세요”라고 했더니 “어이구 기특하네. 그럼 어묵도 빼?”라고 하셨다. 어묵을 생각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구나. 어묵도 빼달라고 하니 “맛살은?” 하셨다. 맛살은 괜찮지 않나. 게맛살에 꽃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 맛살도 빼고 나니 김밥은 단무지와 당근만 들어간 채로 나왔다. 헛헛한 배를 부여잡고 옆 편의점을 들렀는데, 평소에 즐겨 먹던 제품에 우유와 달걀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날 저녁은 연두부와 바나나, 군밤으로 해결했다. 편의점에 그래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비건으로 맛있는 삶을 살기 위한 노하우를 깨닫기 한참 전의 일이다.
비건 첫날밤이 말해주듯, 편의점은 채식을 향한 진입장벽을 가장 낮춰주는 고마운 존재다. 얼마나 편의점이 비건 생활에 유용하면 인터넷에 ‘비건 편의점 위키’까지 존재할까.
비건 선언을 하면 주변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실 이 말은 대부분의 식품에도 해당한다. 꼭 이렇게까지 동물이 함유되어야 할까? 일단 과자류와 간식에는 대부분 소젖이나 달걀이 들어가고, 라면 성분에서도 소, 돼지와 닭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유명한 아몬드 봉지 간식에도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다. 아이스크림이야 그렇다 쳐도, 와사비맛 아몬드에 왜 우유가 추가되는지는 삶의 최대 미스터리다.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비건 음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비건 젤리와 과자도 있고 비건 아이스크림도 있다. 심지어 요새는 비건 삼각김밥, 도시락, 육포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비건 식품에서 은퇴한 친구들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한 ‘감자칩’이다. 비건계 소문에 의하면 한 소비자가 ‘감자칩이 너무 딱딱하다’는 이유로 고객센터에 항의했고, 그 이후로 감자칩 성분에 ‘우유’가 추가되었다나 뭐라나. 일종의 비건 괴담이다. 아무튼, 그 여파로 많은 비건이 그 감자칩을 떠나보냈다.
편의점이 고마운 존재지만, 비건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 비해선 조금 부족하다. 영국의 할인매장 테스코(TESCO)는 가장 값이 싸 편의점 역할도 하는데, 테스코는 대체육 소시지를 포함하여 총 76개의 자체 브랜드 비건 식품을 판다. 별도의 비건 코너가 따로 있는 매장도 많다.
자연에서 미소생태계는 생태계 사슬의 기반을 형성하며 생물 다양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럼 비건 생태계도 마찬가지일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작은 생태계가 동물을 덜 소비하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살기 좋은 기후를 위해,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해, 그리고 고통받는 동물을 줄이기 위해 더 지속가능한 식습관을 택해야 한다. 비건 생태계가 커지면 커질수록 동물성 제품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종교적인 이유로 식단이 제한적인 사람을 위한 선택지도 많아진다. 대안적인 생태계는 소수를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내가 이 미소생태계를 사랑하는 이유다. 홍성환(비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