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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추석은 원래 비건을 위한 날이야!

등록 2021-09-17 09:41수정 2021-09-29 13:56

비건하고 있습니다
농작물 수확 감사하는 기념일
송편도 철저한 비건식 아닌가
다른 사람 취향 탓하지 말고
모두가 행복한 시간 보내야
일러스트레이션 백승영
일러스트레이션 백승영

추석은 비건에게 기대감보다는 긴장감을 먼저 선사한다. 그중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먹는 문화는 스트레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 ‘대휴일’인 추석에 비건만 풀이 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추석은 비건이 훨훨 날아다녀야 하는 명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알고 적도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 있다는 가정하에 추석을 알아보자. 추석이란 무엇인가?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추석은 “추수기를 맞이하여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며,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한국 최대 명절”이다. 그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농경 사회는 대부분 가을 절기에 수확을 기념하는 행사를 지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찾은 신대륙에서의 첫 옥수수 수확을 기념하는 날이다. 영국에서는 수확한 농작물을 함께 나누고, 러시아에서는 햇곡식과 햇과일을 먹는다. 중국에서는 보름달을 향하여 감사의 제사를 지내며 월병을 먹고, 일본에서는 오봉절에 제철 과일, 야채와 떡을 먹고 제사를 지낸다. 공통점을 발견했는가? 그렇다, 추수감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수확을 기념하는 제철 과일과 야채다. 송편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동아시아 추수기 명절의 특징 중 하나는 햇곡식으로 만든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중국의 월병, 일본의 보타모치, 우리나라 송편은 모두 쌀, 보리 등으로 피를 만들고 소에는 보통 깨, 콩, 팥, 밤 등이 들어간다. 이보다 훌륭한 비건 간식이 따로 없다.

추석에는 많은 가정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라면 다음 몇가지 질문을 고려해보라. 왜 지금의 차례상에는 제철 음식이 없는가? 원래대로라면, 차례상에는 조상을 위한 제철 음식이 올라가야 마땅한데 왜 애꿎은 돼지고기가 올라가는지 자문해보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과연 지금의 차례는 조상을 제대로 기리고 있는가? 조상이 무엇을 좋아할지 알 수 없어 이것저것을 놓은 모양새가 된 지금의 차례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지 의문이다. 제대로 된 전통을 지키고 싶다면, 조상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차려 놓아야 한다(우리 증조할머니는 완전 채식주의자셨고, 우리 외할머니의 최애 음식은 신선한 쌈 채소였다).

추석은 가족,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일도, 다음의 풍년을 기원하는 일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있다. 더군다나 현대인에게 추석은 더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함도 아니고, 차례를 완벽하게 지내기 위함도 아니다. 나처럼 자존심이 높아 선뜻 손을 못 내미는 사람에게 추석은 사이가 틀어진 직장 동료에게 선물 쿠폰을 날리며 화해를 도모하거나 주차 문제로 늘 다퉜던 이웃에게 포도 상자를 선물하며 환심을 살 다시없는 기회이다. 그뿐인가. 추석이란 외롭고 고되게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고향에 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이다. 가족 중에 비건이 있다면 그들이 최대한 편하고 행복하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추석 문화와 가치를 제대로 향유하는 것이다. 본인의 윤리적 가치관을 타이르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꼭 고향이나 본가에 가지 않더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과 보낸다면, 그게 추석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이가 있다면, 물리적 압박의 힘을 이기는 소망의 힘을 믿으라 이야기해주고 싶다. 물리적 압박은 뒤에서 등을 떠미는 데에 그치지만, 소망은 앞에서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자리는, 바라는 바와 행동하는 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이번 추석이 당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다 함께 잘 살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홍성환(비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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