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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기도를 부탁해

등록 2021-09-24 04:59수정 2021-12-06 14:26

김금희의 식물하는 마음
“장군이가 꽃 받고 환하게 웃네.” 같이 있던 남편이 말했다. 입가가 좀 늘어진 반려견은 평소의 표정이 그랬듯 정말 개구쟁이처럼 웃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하고 나는 마음으로 말해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반려견이 노환을 앓았기 때문에 내게는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아픈 반려동물을 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가서 글을 읽어보는 것이 그 준비의 사실상 핵심이었다. 지난주 아침, 엄마가 전화해 장군이가 갔어,라고 울먹이며 전할 때 나는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알았다. 화장업체에 연락하는 것과 꽃집에 가서 꽃을 사는 것. 길을 나서니 가을 햇빛이 아주 세고 쨍했다. 보도블록에 빛들이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역 지하상가 꽃집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꽃은 어디에 쓰시려고요?” 하고 친절하게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첫 손님일지 모를 내가 불운한 소식을 사장과 나누는 것이 괜찮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설명이 떠오르지 않아 “저희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서요”라고 솔직히 답했다. 조금 떨리는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하기는 이제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열여덟 해 동안 함께한 존재가 없는 나가 된 것이었다. 사장은 소국을 권했고 나는 거기에 작고 귀여운 노란 꽃잎의 꽃을 추가했다.

“저도 강아지를 두 마리 길러요. 일곱살이에요.”

사장은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빠르고 익숙한 손길로 줄기들을 다듬고 잔잎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 손길을 보고 있다가 “그러세요?” 하고 반겼다. 아마도 웃었을 것이다.

“네, 언제나 걔들이 먼저예요, 저는. 가게 문 닫고 들어가서도 저 밥 먹기 전에 걔들 먼저 먹여요. 그러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래도, 그게 안 돼.”

“맞아요, 안 되죠. 너무 예쁘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요, 걔네가 브이아이피(VIP)예요, 늘.”

꽃이 정리되고 가벼운 비닐로 포장하면서 사장은 한달에 두세번은 이런 꽃을 사러 사람들이 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굉장히 위안받았는데 여기 들어서면서 뭔가 미안하고 죄스럽게 느껴진 것이 기우였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드를 내밀자 사장은 약간 몸을 숙여 받았고 내가 나갈 때는 “잘 보내고 오세요”라고 말해주었다. 근처에는 얼마 전 안타까운 인명 사고가 일어난 곳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고 마음 아팠었는데 그날 아침은 더욱 그랬다. 거리에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고 그건 사고 무렵보다 더 수가 늘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한편에 죽음을 두고 걷고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러 가야 하는 죄스러운 날들, 안타깝고 슬프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저 작고 아름다운 한 다발의 식물들. 가장 간절하고 애끓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이런 것에 기대게 된다고 생각했다. 꽃, 나무, 달, 물결, 하늘, 구름처럼 모두에게 주어져 ‘갖는다’는 개념이 아예 불가능하고 그래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 것들에.

꽃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장례지도사는 “함께 넣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반려견이 너무 말라 추울 거라며 따뜻한 겨울옷을 입혀 보냈는데, 장례지도사는 평소에 입던 옷이야말로 가장 좋고 예쁜 수의라며 잘하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몸에 마비가 와 일년 넘게는 일어날 수도 없었던 나의 강아지,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사원에서 마흔이 넘는 작가가 되기까지 함께한 내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안고 쓰다듬고, 채 말할 수 없는 인사는 눈물로 대신했다. 장례지도사가 화구 앞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반려견을 보여주었다. 내가 한동안 바라볼 수 있게 잠시 기다리다 내가 놓았던 꽃다발을 팔 사이에 껴서 반려견이 마치 선물받은 꽃다발을 폭 안은 듯 해주었다.

“장군이가 꽃 받고 환하게 웃네.” 같이 있던 남편이 말했다. 입가가 좀 늘어진 반려견은 평소의 표정이 그랬듯 정말 개구쟁이처럼 웃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하고 나는 마음으로 말해주었다. 여섯살 때 시력을 잃고 그 뒤 12년을 실명 상태로 지냈던, 그럼에도 늘 씩씩하고 당당했던 반려견의 삶은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 삶을 지켜볼 수 있고 마지막을 이렇듯 꽃으로 축원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러번 생각했다. 이제 그 다행함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고.

그날 밤, 친구인 쩡아가 연락을 해왔다. 며칠 전 만났을 때 상황이 좋지 않다고 걱정하는 대화를 나눴는데 그새 이렇게 된 것이었다. 나는 눈이 아플 만큼 울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혼자 있을 수가 없어서 저녁에 나가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아주 오랫동안 그럴 거야.”

몇 해 전 엄마를 잃은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집에 있을 것 같고 영상통화 하면 통화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그렇더라고.”

친구의 말 하나하나에 어린 슬픔이 전해지는 듯했다. 이내 친구는 화제를 돌려 네게는 식물들이 있잖아, 그걸 잘 보살펴,라고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못 그럴 것 같아, 다 성가셔.”

“그러지 마, 나중에 후회해. 물을 주고 보살펴, 알았지?”

반려견이 위중해진 여름부터 사실 나는 식물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화분들이 늘어나고 이따금 물을 주거나 가지를 좀 정리하는 정도가 내 최선이었다. 친구는 반려견이 하늘에서 이제 아프지 않기를 기도해주겠다고 했다. 오래 종교를 가졌던 친구라서 그 말이 더 미더웠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장군이 눈도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해줄 수 있니?”

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의 바람을 더 보탰다. 친구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내게 힘을 주었다. 대화를 마치고 방에서 나갔을 때는 자정이 넘어 있었다. 한때는 잘 자라서 세번을 끊어다 물꽂이를 했던 몬스테라 아단소니가 잎이 몇장 마른 채로 발코니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꽃을 연이어 내던 목베고니아도 언젠가부터 잎색이 옅어진 채 더 이상 꽃을 맺지 않았다. 그런 것을 돌보기 어려울 만큼 오늘의 나는 완전히 텅 빈 것 같지만 억지로 힘을 내어 수도 앞으로 갔다. 이 역시 어쩌면 기도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하는 어떤 일이 내가 바라는 어떤 일의 달성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기대와 바람. 나는 기도를 부탁하는 마음으로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그 얇고 가벼운 잎들을 손으로 간절하게 만져보았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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