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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올리브가 하는 일

등록 2021-11-19 14:59수정 2021-11-19 18:47

김금희의 식물하는 마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생명을 보살피는 마음에서 어떤 대상은 다른 대상으로 대체되지가 않았다. 그 마음은 늘 동일한 것이라서, 쓰려고 하면 여러 대상을 향해 함께 나아갔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함께 멈췄다.

집사들이 모든 식물을 향해 존중과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올리브 화분이 그랬다. 2년 전쯤, 지중해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짙고 고상한 모습의 잎에 반해 처음으로 올리브 화분을 들였다.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 막상 받아본 올리브 화분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잎이 생각보다 소엽이었고 가위를 많이 갖다 댔는지 뾰족하게 잘린 가지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기대와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기억으로는 만원 안팎의 가격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토분에 옮겨 심었다. 햇볕을 쬐이고 물을 잘 주면 잘 자라겠지, 1년 내내 잎이 푸른 식물이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리브는 어쩐 일인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조화처럼 내내 같은 모습이었다. 새잎을 거의 내지 않았고 이따금 말린 잎들이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그런 기척을 낼 때에야 올리브가 살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마치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책을 읽고 있달까. <맘마미아>처럼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열정적이고 활기차며 감정의 발산이 있는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가, 일상의 디테일적 모사에만 열중하는 어느 예술감독의 무섭도록 정적이고 고독한 실험영화를 보게 되었달까. 아무튼 올리브의 상태는 내 기대와 갈망과는 전혀 달랐다.

이사를 오고 자주 가게 된 동네 카페에는 근사한 올리브 화분이 있었다. 우리 집 올리브보다 크기가 컸고 가지가 멋지게 뻗어 나가고 잎이 풍성했으며 잎 모양 역시 올리브 열매가 연상될 만큼 길쭉했다. 나는 카페 앞 보도에 놓여 바람이 불 때마다 긴 가지를 흔드는 올리브를 보며 ‘우아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올리브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들, 평화, 태양, 수확, 결실, 여신, 풍요 등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내가 넋을 놓고 바라보자 남편이 같은 걸 구입하라고 부추겼다. 카페에 물어보면 아마 알려줄 거라고.

“어떻게 그래?”

그러면서 나는 휴대전화로 올리브를 몇장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실 그건 어떻게 물어보냐는 뜻이 아니라 우리 집에도 올리브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는 뜻에 가까웠다. 똑같은 식물이라도 기꺼이 들이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같은 종은 딱 하나씩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삽목을 하거나 물꽂이를 한 것이 아니라면 이 집에는 같은 식물은 없는데 그건 또 왜 그럴까. 적어도 기회비용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미 있는 화분을 선물받았을 때도 똑같이 기뻤으니까. 그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 발코니에서는 각자가 고유한 개성과 존재감을 인정받으며 어떤 유일성을 가지기를 바랐다. 그런 내 마음, 대체가 불가능한 어떤 고유함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마도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적용될 것이다. 그래서 때로 일어나는 문제들도 있을 테고.

그 뒤로 카페에 갈 때마다 올리브에게 관심을 두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일상적으로 발코니에 있는 내 올리브에도 물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올리브 잎들이 딱딱하게 마르고 잎들이 희끗희끗한 것을 발견했다. 손으로 떼어내자 생기 없이 잎이 뜯겨 나왔다.

“있잖아, 죽은 것 같아.”

나는 남편 방으로 뛰어가 알렸다. 남편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가 놀랐잖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올리브.”

“너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에이, 아니야.”

“아니, 너 올리브 새로 살 생각에 웃는 것 같은데, 분명히?”

나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새로운 올리브를 살 생각을 분명히 했고 카페에 가면 구입처는 아니지만 올리브 종류를 알아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다가왔다. 여름만 해도 어떻든 내 옆에서 일으켜라, 물을 내놔라, 배변 패드를 갈아라, 하며 자기 불편함을 이야기해주던 반려견이 떠나고 그 후에 찾아든 막막함과 싸우며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을 해나갔다. 식물들에게 물을 제대로 주기 시작한 건 상실을 겪고 나서 몇주나 지나서였고 식물등을 다시 켠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생명을 보살피는 마음에서 어떤 대상은 다른 대상으로 대체되지가 않았다. 그 마음은 늘 동일한 것이라서, 쓰려고 하면 여러 대상을 향해 함께 나아갔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함께 멈췄다. 꽃이 너무 많이 펴서 꺼려지기까지 했던 백화등은 고사 직전이었고 물 줄 때를 자주 놓쳐 다 마른 자엽안개나무는 거의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겨우 마음을 추슬러 베란다를 들락거린 어느 날, 나는 올리브 화분에 일어난 변화를 목격했다. 새잎이었다. 가장 위 가지에서부터 옆으로 늘어진 가지까지 새순이 열리고 있었다. 그 새잎들의 색은 너무 앳되고 밝아서 햇볕 아래 거의 노란색으로 보였다. 나는 긴 침묵을 깨고 폭죽처럼 생명을 터뜨리기 시작한 올리브 앞에서 오래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올리브가 왜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전보다 물을 자주 준 것도 아니고 비료나 영양제를 주지도 않았고 사실 더 사랑한 것도 아닌데. 변화가 있다면 가을을 새집에서 맞았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그전 발코니는 어떤 이유에서건 올리브에게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 집 발코니에서 폭풍처럼 성장한 식물들이 몇인데 왜 유독 올리브에게만 그게 지체의 원인이 되었을까. 그래도 올리브에 대해 좀 찾아본 결과 알게 된 점이 있었다. 잎의 희끗희끗한 얼룩은 물에 든 철분 성분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올리브의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우리 집 수돗물에 철분이 많구나 여기면 될 일이었다.

이제 올리브는 위나 옆으로 잎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앙상한 채로 나 있던 줄기 마디마디를 새잎으로 채우며 11월을 만끽하고 있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자기 힘으로 걸어 세상으로 나온 사람들이 그렇듯, 올리브에게는 어딘가 분명 자기충족적인 환락이 있어 보인다. 오늘을 위해 그 오랜 시간을 얼음처럼 가만히 멈춰 힘을 기르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그동안의 내 무지가 미안해지지만 그런 집사의 복잡한 마음이야 상관없이 올리브는 오늘도 자기 마음대로 자라고 더 높이 뻗고 새순을 열어 보인다. 바로 그것이 지금 올리브가 하는 일, 원래 자기 마음에 맞게 올리브가 해내려던 일이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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