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정크 아트'. 김강은 제공
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
2021년은 ‘플로깅 대유행의 해’다.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시작된 플로깅은 이제 달릴 때뿐만 아니라 산을 오르거나 강변과 해변을 걷고 타지를 여행할 때도 하는 활동이 됐다. 플로깅 외에도 줍깅, 쓰담(쓰레기 담는)달리기 등 우리말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환경 활동이 트렌드가 된 것이다. 플로깅이 유행하기 전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임을 꾸려온 1세대로서 흡족한 마음이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게 된 건 어쩌면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더럽혀지는 것이 싫은 심리였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할 땐 10~50㎏씩 줍고 혼자 산을 오를 땐 30개씩 줍는다. 갓 버려진 따끈따끈한 신상 쓰레기부터 50년도 더 되고도 썩지 않는 라면 봉지와 같은 오래된 쓰레기까지. 매일 새로운 쓰레기 줍기가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지난 늦가을 무렵, 이번엔 산이 아니라 남양주시의 한 하천을 찾았다. 남양주시 와부읍의 적갑산 끝자락에서부터 이어지는 ‘궁촌천’에서 아이들과 함께 플로깅을 하기 위해서였다. 청소년들의 환경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한국숲밧줄놀이연구회의 교육 프로그램에 멘토로 초청받았다. 궁촌천 앞에 도착하니 긴 집게와 장갑, 그리고 커다란 장바구니로 중무장한 환경 어벤저스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병, 맥주캔 등으로 만든 쓰레기 작품. 김강은 제공
마지막 가을빛으로 무르익은 계곡은 단풍과 낙엽들로 화려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웠던 궁촌천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쓰레기 천’이었다. 1시간 남짓 쓰레기들을 주우며 경악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각종 술병과 대형 스티로폼과 대걸레와 세제 통, 자동차 부품 등 생활 쓰레기들. 아이들은 작은 개울의 탐험가가 되어 꼭꼭 숨어 있는 쓰레기를 발견하고 영웅처럼 주워다 날랐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술병이 또 나왔어요!” 여기저기서 분주한 외침이 들렸다. 작고 작은 손에 들린 술병과 담배꽁초들이 역설적이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버리고 가는 거예요?” 순수한 영웅의 원초적인 질문에 처음으로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 미안했다. 정말 묻고 싶다. 우리 어른들은 이 고사리손들이 이런 쓰레기를 줍게 해야 했는가? 불행 중 다행히, 아이들은 낙담하지 않았다.
직접 주운 쓰레기를 이용해 ‘정크 아트’(폐품을 소재로 한 미술 장르)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마지막 미션이었다. 주워온 쓰레기들을 둘러보며 나란히 배열하고, 쌓고, 오리고 붙이기도 하며 고주망태가 되어 쓰레기를 버리는 딸기코 아저씨를 표현했다. 하얀 스티로폼을 높이 쌓아서 우리의 활동을 축하할 쓰레기 케이크도 만들었다. 이 상황을 풍자하는 멋진 쓰레기 작품이 탄생했다.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직접 두 손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자연스럽게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한 친구들은 환경을 주체적으로 지켜나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게 바라본 자연을 아이들도 아름답게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산에 반했던 것처럼, 앞으로 누구라도 반할 수 있는 그런 자연이면 좋겠다.
김강은(하이킹 아티스트·벽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