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
‘등반’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나의 20년지기, 동덕여대 산악부 출신의 친구가 신입생이었을 때 하던 하소연이 그 첫 기억이다. “잡을 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손이 다 까지도록 작은 돌기 하나 붙잡고 바위에 매달려서 몇 시간을 울부짖었는지 몰라!”
당시 산과 연이 없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심드렁했다. ‘뭐 저런 걸 한담? 진짜 못 말리는 애라니까’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천길 낭떠러지 암벽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것도 바로 북한산 인수봉에.
등산 학교를 다닌 지 4주차가 됐다. 주말을 꼬박 반납하며 바위와 친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강은씨, 잘하는데?” 동기들의 아낌없는 격려에 ‘나 좀 잘하는 걸까?’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5주차, 진짜 실전이다. 산악인들의 메카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할 차례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실습은 바위의 한 구간을 오르는 단피치였다면, 이제는 10~30m 구간 여러 마디를 오르는 멀티피치를 할 차례다. 고개를 90도 꺾어 올려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수봉 앞에 서니, 자신 있던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하나의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이듯, 등반 루트도 여러 개다. 인수봉을 오르는 루트도 85개나 된다. 우리 조가 향한 곳은 ‘비둘기길’. 1960년대 창립한 산비둘기산우회가 개척한 길이라고 한다. 날씨가 예상과는 달리 날이 흐리고 추웠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몸이 덜덜 떨려왔다. 첫번째 피치는 수월했다. 문제는 2피치부터였다. 바위의 갈라진 틈새를 일컫는 ‘크랙’이 있어 손잡이가 확실하지만, 아찔한 바위의 각도와 고도감에 두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해버리는 상상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추락을 대비해 내 몸에는 확보줄이 걸려 있는데도 좀처럼 줄을 믿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강사님이 외친다. “천천히 길을 찾아봐!” 마음을 다잡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를 믿어야 한다.’ ‘나의 줄을 믿어야 한다.’ ‘나의 선생을, 그리고 나의 동료를 믿어야 한다.’
인공 볼트를 잡고 옆으로 이동하는 세번째 피치를 지나, 커다란 크랙(바위 갈라진 곳)에 손발을 끼워 넣어 오르는 마지막 구간으로 향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빨리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마지막 피치 절반을 지났을 때 환호성이 들려왔다. “김강은 파이팅! 김강은 브라보!”
인수봉이다! 그제야 멈췄던 호흡이 돌아온 듯했다. 인수봉을 오르니 태극기가 휘날리는 북한산 정상 백운대가 보였다. 늘 백운대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인수봉에 내가 올라와 있다니. 문득 돌아본 동기들의 얼굴은 꼬질꼬질했지만 그리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표정들이다.
‘오르는 과정이 험하고 힘들수록 깨달음이 크다.’ 글로만 배운 산악인의 정신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낀 순간. 산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그간 느슨해진 듯한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산을 만나는 또 다른 길을 찾은 것 같다. 다음은 졸업등반, 도봉산 선인봉이다.
김강은 벽화가·하이킹아티스트
북한산 인수봉에 오르던 날의 모습. 김강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