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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한 지 10년차, 이쯤이면 질릴 때도 됐는데 [ESC]

등록 2022-06-18 15:10수정 2022-06-18 19:16

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

단양 제비봉의 풍경. 김강은 제공
단양 제비봉의 풍경. 김강은 제공

🌄 제비봉
높이: 721m
코스: 제비봉공원지킴터-제비봉-원점회귀(장회나루 휴게소 주차)
거리/시간: 약 4.5㎞/4시간(등산화와 장갑 필수, 스틱 사용 권장)

산과 연애한 지 벌써 10년차. 이쯤이면 질릴 때도 됐는데, 아직도 못 말리는 나의 산 사랑은 ‘유전’이 아닐까? 나의 가장 오래된 산 벗, 아버지와 코로나 시국이란 이유로 미뤘던 동행을 하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해마다 지리산을 함께 가던 것이 연례행사였지만 이번에는, 에스엔에스(SNS)에 핫하게 떠오르는 명소 충북 단양 제비봉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함께 배낭 메고 떠나는 여행이라니! 간만에 설렘이 가득했다.

충주호반에서 바라보면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 붙여진 제비봉. 충주호를 비롯해 단양팔경·고수동굴·단양온천 등 주변 관광지가 많아 등산과 함께 관광도 할 수 있는 산이다. 제비봉을 오르는 두가지 코스 중 볼거리가 많은 장회리 코스를 선택했다.

초장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졌다. 땀이 맺히다 못해 턱선을 타고 줄줄 흘렀지만,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간만에 하는 산행에 이 오름짓마저도 좋으신 걸까. 아니면 산에 정말 미치신 걸까! 부전여전이다. 도심에서는 늘 바쁘게 앞서갔던 아버지가 느긋하게 속도를 맞췄다. 가파른 길일수록 속도를 늦추고, 동행자와 발맞추어 걷게 하는 것. 산이 가진 힘이다.

제비봉에 올라 그린 그림. 김강은 제공
제비봉에 올라 그린 그림. 김강은 제공

한두 사람 지날 수 있는 좁은 돌길과 데크 계단을 번갈아 오르니 고래등 같은 너럭바위 전망대가 나타났다. 그 뒤로는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하늘로 향하는 경사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계단길이 이어졌다. 오르는 길은 지옥에 가까웠지만, 지옥 뒤에 찾아오는 풍경은 가히 천국이었다! 에스라인으로 굽이치는 충주호와 그 주변으로 거칠고 옹골찬 산세가 세 갈래로 뻗어나가는 한 폭의 풍경. 바위 곳곳에는 굽이치는 소나무와 고사목들이 분위기를 더했다. 정상까지는 약 1.5㎞가 남았지만 이곳 풍경이 제비봉의 제일경이다. 민트 색상의 충주호 앞에 서서 민트 향을 온몸으로 들이마시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팔레트를 펼쳐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버지는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한 사람과도 10년을 만나면 지겨운 법인데,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투정 부리며 산을 올랐던 때가 무색하게 산을 향한 10년차 긴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유전의 힘도 있지만, 아직도 산을 향한 마음이 뜨거운 건 정상을 향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산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또 많은 걸 얻었기 때문이다. 산을 통해 자신감을, 친구를, 직업을, 그리고 새로운 꿈을 얻었다.

산을 통해 삶을 여행하는 이야기, ‘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는 이번 편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산을 사랑하는 여정은 끝이 아니다. 아직도 무궁무진한 국내외 명산을 여행하고, 산을 통해 사람을 여행하고, 이제껏 그린 100대 명산 전시회도 열고 싶다. 앞으로도 걷고 오르고, 많은 것을 담아낼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이제껏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언젠가 산 위에서, 길 위에서 마주하길 기대한다.

김강은 벽화가·하이킹아티스트

※칼럼을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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