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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단칼에 베어내소서

등록 2021-12-30 14:54수정 2021-12-30 15:18

이거 물건이네: 대장간 칼

제품명: 쌈지농부 파주대장간 수제칼 25㎝

구매 시기: 2021년 10월

구입처: 인터넷 쇼핑몰

가격: 1만원 (택배비 별도)

특징: 최고의 그립감
십여년 전, 지리산이 보이는 친구네에 며칠 묵으면서 대장간에 가본 적이 있다. 망치질 소리가 연신 들려오는 그곳엔 이미 농기구를 고치러 온 사람들 여럿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한두시간 정도 지났나. 좀이 쑤셨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자니 한 할머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옛날엔 대장간 오면 한나절이 걸린다고 했지.” 그나마 지금은 빨라졌다는 얘기였다. 친구는 수리를 포기하고 왼손잡이가 쓰기 편하도록 만든 왼낫 하나를 사 왔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대장간의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가 잊히지 않았다.

문득 대장간에서 두드린 무쇠 칼이 갖고 싶었다. 어릴 때 집에서 쓰던 무쇠 칼. 선물로 받은 유명 독일 브랜드의 칼 세트가 있었지만 손가락을 크게 베인 뒤엔 좀 무섭게 느껴졌다. 소량의 음식 장만에 큰 칼을 계속 휘두르는 것도 번거로웠다. 인터넷 검색 끝에 발견한 것이 25㎝짜리 대장간 칼. 과일칼과 일반 식칼의 중간 크기 정도다. 무쇠 칼이지만 생각보다 가볍고, 손에 잡히는 나무 손잡이의 그립감이 놀랄 만큼 좋다. 처음엔 쓰고 난 뒤 마른행주로 물기를 잘 닦고 칼날에 매번 기름칠을 해두어 녹을 방지해야 한다. 조금 번거로운 듯했지만 기름칠을 열번 정도 하고 나니 거의 녹이 슬지 않았다. 이 칼은 1인용 작은 도마와 함께 쌍을 이뤄 지금까지 많은 일을 척척 해냈다.

지난가을 다시 지리산을 찾았다. 대장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들었지만 가게에서 여러 크기의 무쇠 칼을 만날 수 있었다. 동행한 친구에게 사보라고 권했더니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나 “나도 쓰고 있다”며 기름칠만 잘하면 평생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장간 무쇠 칼 예찬론을 펼쳤다. 어떤 명품 칼 부럽지 않다.

새해를 맞아 지난 한해 마음속에 슬어버린 녹도 슥슥 갈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켜켜이 쌓인 응어리도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다. 싹둑!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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