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그대로인 것들이 있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가지를 크게 흔들었다가 다시 바로 서는 나무들 같은 것. 누군가들은 다행히 우리 곁에 그런 사람들로 남아 있다.
기르는 식물 중에는 특정 사람과 연관된 것들이 있다. 식물에 이렇게 빠지기 전 우리 집에 와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부겐빌레아는 엄마의 항암 투병이 끝난 날 들인 식물이다. 부겐빌레아를 볼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리고 시장의 화분가게에서 오래도록 식물들을 골라 그 부겐빌레아 포트를 집어 올리던 오래전의 나도 생각난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지만 당연히 암은 쉽지 않은 병이었다. 그러니 화분을 들고 오던 날에는 분명 활기와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다 부겐빌레아가 가지를 죽죽 뻗어 잘 자랐으니 투병의 어두운 기억을 분명히 덜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는 식물에 다른 대상을 겹쳐놓는 일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부겐빌레아가 혹시 잎이 마르면 생기가 없어 보이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물론 잘 자라고 있으면 엄마에게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기대도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식물의 상태에 기탁하는 일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요즘 발코니에서는 부겐빌레아 꽃이 한창이다. 부겐빌레아 가지에는 뾰족한 가시가 있고 목질화된 가지들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자란다. 좁은 발코니를 오가다 보면 마치 지나는 사람을 슬쩍 붙들듯이 부겐빌레아 가지가 옷에 걸리곤 한다. 4월에서 11월까지 거의 연중 꽃이 핀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대개 한겨울이 되어야 꽃이 올라온다. 처음에는 장미꽃잎처럼 풍성하게 자라난 잎이 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꽃이라고 여겼던 그것은 진짜 꽃을 보호하기 위한 포엽이었고 진짜 꽃은 그 속에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크기로 있었다. 그 꽃이 그 꽃이 아니라니, 사실을 안 날 나는 다소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포엽에는 연하게 잎맥도 있고 색도 흰빛 속에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지인 중 하나는 내가 식물을 기르는 것을 무척 신기해한다. 만나서 그 대화가 나왔을 때 얼마 전 해바라기를 선물받았는데 그게 꽃이 아니라 화분이었다며 거의 울상을 지었다.
“화분이라도 두고 기르면 좋죠.”
“아니, 죽으면 어떡하냐고요. 내가 죽이면.”
나는 성의 있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구나, 하고 이해했다. 누군가가 생명이 있는 것을 건네면 마치 상대의 일부가 건너온 듯 마음을 걸게 되는구나, 하고. 하지만 식물의 상태는 늘 예측할 수 없고 어느 집에서나 식물은 피고 진다. 어떻게 식물을 잘 기를 수 있어요? 하고 물으면 많은 그린 핑거스들은 일단 많이 죽여봐야 해요,라는 냉철하지만 어쩐지 섬뜩한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거기에 식물 대신 무엇을 넣어도 우리가 납득할 만한 문장이 된다.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일단 많이 망쳐봐야 해요. 어떻게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어요? 일단 싸우고 안 보기도 해봐야 해요. 그렇게 실패를 독려하는 문장들. 나 역시 실패야말로 이후의 갱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여기지만 받아들이기란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단선적인 단계의 누락이 아니라 알고 있던 세상의 입체적인 붕괴이니까. 우리는 대개 크게 상심하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생활 자체가 무너지도록 무섭게 앓는다.
부겐빌레아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내가 첫 책을 내기도 전이었다. 지나서 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은 시기였다. 글을 쓰고 싶어도 지면이 없는 것, 그러니 자연히 회사원으로 일할 때보다 수입이 심각하게 줄어든 것. 오랜 꿈을 이루겠다며 적어도 겉으로는 호기롭게 사표를 냈지만 어려운 순간들이 일상을 잠식했다.
엄마가 항암을 마치고 나 역시 나의 현실로 돌아갔을 때도 이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죽음과 싸우는 엄마를 돕기 위해 정신없이 흘러갔던 시간들 뒤에는 여전히 다를 것 없는 나의 실패들이 있었다. 가족들에게 자주 화를 내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다 나는 휴대전화의 착신을 일년 가까이 정지시켰고, 그래도 문자메시지는 송신될 수 있다는 말에 지금 생각하면 좀 잔인하게도 가족들의 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해 차단시켰다.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그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밀쳐내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정도로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스스로를 보지 않기 위해 거울을 치운 셈이었고, 어쩌면 엄마가 항암을 이겨냈기에 가능한 방황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일과 관련해 서울을 다녀오다가 전철에서 스팸으로 걸러낸 문자들을 확인했다. 앱을 깔면 또 그 문자들을 보관해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숱한 광고 문자들과 함께 엄마의 문자들이 남아 있었다. 밥은 먹었니? 아픈 데는 없니? 하는 문장들. 이제 정말 글에 집중해야 한다고, 해야 할 일이 많아 연락이 안 된다고 못 박아두었는데도 엄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문자로 내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답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왜 계속 그런 문자를 보냈느냐고 묻지 못했다. 너무 미안해서다.
삶이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그대로인 것들이 있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가지를 크게 흔들었다가 다시 바로 서는 나무들 같은 것. 누군가들은 다행히 우리 곁에 그런 사람들로 남아 있다. 얼마나 큰 좌절에 빠져 있든, 얼마나 아프게 실패했든, 그러니까 지금 그 꽃이 우리가 바라던 바로 그 ‘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선선히 있어주는 마음에 대해 깨닫는 순간 후에는 실패 자체도 누그러지고 새날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넘어질 일이 생기더라도 그전보다는 그 기우뚱한 중력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매번 중력을 이기고 키를 높이는 여느 식물들처럼, 꽃이 아닌 잎이라도 뿌듯하게 밀어 올려 찬탄을 만들어내고 마는 세상의 모든 ‘부겐빌레아들’처럼 말이다.
김금희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