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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주꾸미 철? 주꾸미 알 철!

등록 2022-02-24 10:59수정 2022-02-24 11:08

[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주꾸미와 딸기]

주꾸미. 게티이미지뱅크
주꾸미. 게티이미지뱅크

예로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 때문인지 이맘때면 온통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알이 꽉 찬 주꾸미를 끓여라 구워라 난리법석이다. 하지만 3월은 이미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주꾸미의 제철이 아니다. 봄의 전령사 주꾸미라는 말은 누가 처음 쓴 걸까? 주꾸미가 알을 배고 산란을 시작하는 시기가 대략 2월부터 두서너달 지속된다. 이때를 우리는 ‘주꾸미 철’이라 부르며 대가리에 가득 찬 ‘밥알’ 사진을 자랑삼아 찍어댄다. 실제로 꽉 들어찬 알은 한 숟가락 정도 되는 밥처럼 희고 매끄럽다. 다른 생선알처럼 톡톡 터지지 않고 진득하고 고소한 맛이 마치 잘 지은 밥과 같다. 하지만 무심코 먹은 이 한 숟가락의 알은 몇백마리 이상의 주꾸미다. 5월 말이 되면 주꾸미 개체 수 보존을 위한 금어기가 시작되고 8월까지 꽤 길게 이어진다. 산란을 마치고 안정적으로 자란 주꾸미는 가을이 되면 살이 포동포동 오른다. 그렇다. 살이 오른 주꾸미는 가을에 더 맛있다! 이쯤 되면 3월은 주꾸미 알 철이라 하는 게 맞다.

3월의 바다는 겨울을 버텨내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알배기 꽃게도 그렇고(실제론 알이 아니다. 난소다.) 주꾸미도 그렇고 수많은 바다 생물의 태동기다. 이런 봄에 더 맛있는 것들을 찾아 육지로 눈을 돌려보자. 지금부터는 하우스가 아닌 밭에서 나오는 딸기도 나오기 시작할 거고 익숙한 새콤달콤한 딸기 맛을 제대로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개량종이 개발되고 보급되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품종의 딸기를 찾아서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나 여전히 흙바닥에서 구르고 햇빛을 받아 빨갛게 익어가는 조그마한 밭딸기는 기억 속의 그 딸기 맛이다. 꼭지를 떼어내기도 아쉬우리만큼 작고 소중한 아이들을 듬성듬성 잘라 국대접에 넣고 설탕을 반 숟가락 뿌린 뒤 우유에 말아 먹는 그 맛. 여기에 시리얼 한 움큼을 더하면 세상에 둘도 없이 맛있는 간식이었던 시절. 딸기는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 여름 직전까지 나온다. 과일은 무조건 커야 한다는 선입견은 봄에 나오는 자그마한 밭딸기로 인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 어느새 12월이 제철인 것처럼 되어버린 우리네 딸기. 너무 일찍부터 먹기 시작하면 예전부터 존재하던 그 맛에 대한 기억도 잊어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자. 천천히 오래 먹는 게 모든 이들의 꿈 아니었던가!

겨울이 제철인 줄 알았던 귤 중에 봄에 먹는 귤도 있다. 바로 한라봉이다. 한라봉은 4월까지도 수확을 하는데 특유의 두꺼운 껍질과 여리여리한 속살의 대비가 재미있다. 천혜향도 3월에 가장 맛있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귤이다. 얇은 껍질과 새콤달콤 톡톡 터지는 볼륨감을 가지고 있는 과육. 의외로 봄에 더 맛있는 귤들은 알맹이가 크고 튼실하다. 최근에는 더 크게 육성 재배하여 판매하는 제품들도 있던데 크기가 어린이 얼굴만 하다. 맛을 보면 크기가 큰 천혜향이 만족스럽긴 하다. 유난히 얇고 딱 달라붙어 있는 껍질의 천혜향. 한번 고생스럽게 깠는데 과육을 많이 먹을 수 있으니 커다란 크기의 천혜향이 당연히 인기 만점이다.

3월을 알리는 진짜 전령사는 쑥이다.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땅을 뚫고 나와 나지막하게 땅에 붙어 숨어 있다가 이파리를 흔들면 그 화려한 향을 발산하는 쑥. 쑥이야말로 진정한 봄의 향기! 봄의 맛이다. 도다리쑥국의 유래도 쑥을 먹기 위해 쑥이 제철인 시즌의 생선을 갖다 붙인 거고 쌀가루를 쑥에 묻혀 쪄낸 쑥버무리, 쑥과 쇠고기로 미트볼 형태의 완자를 만들어 맑게 끓여낸 애탕 같은 요리들도 쑥이 주인공이다. 요맘때 뒷산에 오를라치면 주머니에 작은 과일 포크를 하나씩 챙겼더랬다. 눈에 보이는 연녹색의 어린 쑥 이파리 옆으로 포크를 살살 밀어 넣고 땅을 파내면 작은 뿌리를 가진 쑥이 올라온다. 집에 가져와 잘 씻어서 방앗간에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색소를 넣은 듯 진한 녹색의 쑥떡을 뽑아주곤 했었다. 쑥의 향은 민트보다 달다. 쑥의 맛은 깻잎보다 진하다. 초록의 쑥떡이 입에 들어온 순간이 진짜 봄이 온 순간이었다.

봄의 맛은 이렇게 사방에 널려 있다. 눈앞의 봄을 제대로 먹는 진정한 미식가를 위한 시기. 다양한 봄 먹거리와 함께 3월을 맛있게 즐기자.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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