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 ‘오울’의 다양한 전통주 칵테일. 서울뮬, 진토닉, 참외, 폭탄주(왼쪽부터). 임경빈 어나더스튜디오 실장
이제는 칵테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불을 지핀 와인의 인기는 이제 위스키까지 번졌다. 현재 이름난 바에서도 위스키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로 시장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이러한 위스키의 인기는 싱글 몰트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에서 즐겨 마시는 칵테일의 기본 재료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먹는 칵테일인 하이볼의 기본 재료는 버번위스키다.
바에서 한두잔 칵테일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에서도 칵테일을 만들어 먹고 있다. 코로나 상황으로 바에서 먹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 과거 음침한 바 구석에서 먹던, 또는 독한 술을 싫어하는 달달한 여성 취향의 술이라는 선입견은 이제 안녕. 칵테일은 현재 한국의 음주문화 지평을 넓히고 있는 일등공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 ‘오울’의 바텐더가 전통주를 이용한 칵테일 ‘폭탄주’를 만들고 있다. 임경빈 어나더스튜디오 실장
‘술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칵테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술꾼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테다. 칵테일 바에 들어서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술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들어가는 부재료에 따라 맛도 향도 잔의 모양과 얼음의 형태까지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술이 바로 칵테일이다. 대한칵테일조주협회에 따르면 칵테일이란 ‘술에 과즙, 탄산음료 등의 부재료를 혼합하여 만든 음료의 총칭’으로, 두가지 이상의 재료를 혼합하여 만든 혼합 드링크(Mixed drink)를 의미한다.
칵테일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수십가지가 있지만,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있는 캄페체라는 항구도시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술을 섞어 마시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영국 선원들이 멕시코에 입항한 뒤 가장 처음 마셨던 술이 바텐더가 만들어준 혼합주였고, 이를 ‘칵테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 술을 젓는 나뭇가지의 모양이 수탉의 꼬리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기인했다.
칵테일 바에서만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는 편견도 사라지는 추세다. 길어지는 팬데믹 시국에 집에서도 칵테일 바 못지않은 ‘홈텐딩’을 즐기는 이도 많아졌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시간이 축소되면서 바를 방문하는 고객이 줄었다. 상대적으로 집에서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스마트 오더를 활용한 칵테일 주류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재구 한국음료강사협의회 회장은 말했다. 실제로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편의점에 방문해서 주류를 픽업할 수 있는 ‘스마트 오더’ 서비스의 매출이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칵테일 베이스로 사용되는 하드리큐어(주정에 과즙 감미료 등을 섞은 독한 혼성주) 매출이 급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지에스(GS)더프레시의 스마트 오더 픽업 매출 2위를 기록한 술이 바로 캄파리 홈텐딩 키트였을 정도다. 이탈리아의 유명 혼성주 브랜드인 캄파리를 포함해 칵테일용 주류 4종에 홈텐딩 도구 6종이 함께 구성된 홈텐딩 전용 키트로 홈텐딩족을 겨냥한 제품이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바 참’과 ‘뽐’을 운영하는 임병진 바텐더는 “팬데믹 시기가 길어지며 홈칵테일족도 엄청나게 진화했다. 고급 바에서 사용하는 글라스와 기물을 갖춰 놓는 홈텐딩족이 늘어나고 있다. 홈텐딩은 이제 칵테일 문화의 한 장르”라고 설명했다.
다소 귀찮은 과정일 수도 있는 홈텐딩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티(IT) 회사에 재직하는 김윤석(40)씨는 자타공인 ‘홈텐딩 전문가’다. 매일매일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칵테일을 에스엔에스(SNS)에 게시할 정도로 칵테일 만들기에 빠져 있다. 그는 ‘원하는 스타일로 연출이 가능하다’고 홈텐딩을 예찬했다. 시원하게 꿀꺽꿀꺽 마시고 싶을 때는 커다란 잔에 얼음을 가득 넣고 진토닉이나 하이볼, 캄파리 토닉같이 간단한 롱 드링크를, 늦은 저녁에 갑자기 한잔이 당길 땐 올드 패션드(위스키에 리큐어, 설탕을 섞은 칵테일) 같은 온더록스 스타일이나 사제락(코냑과 압생트, 설탕 등을 섞은 칵테일)·사이드카(브랜디에 레몬주스 등을 섞은 칵테일) 같은 밀도 높은 한잔을 만들어 먹는다고. 김씨는 “매일매일 기분과 상황에 맞는 술을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점이 홈텐딩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김준구(44) 대표 역시 소문난 ‘홈텐딩 마니아’다. 그는 “칵테일은 퇴근한 뒤 고생한 스스로에게 주는 한잔의 보상”이라며 “아껴둔 좋은 글라스에 증류주와 탄산음료,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과일 장식 조금이면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가장 즐겨 마시는 칵테일은 네그로니와 올드 패션드. 두 칵테일 모두 오렌지가 들어가는데 마침 지난 3월, 오렌지의 계절 관세가 해제되며 부담 없이 양껏 만들어 마시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껍질의 풍미가 좋은 네이블오렌지를 이용하면 좋다”는 팁도 전수했다.
임병진 바텐더는 “칵테일은 온도가 무척 중요한 술이다. 술의 온도만 잘 맞춘다면 누구나 편하게 홈텐딩을 즐길 수 있다”며 “일반 가정용 얼음 대신 잘 녹지 않는 돌얼음을 사용하면 온도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서양의 고도주를 베이스로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 클래식 칵테일이라면 최근에는 다양한 술로 칵테일을 만드는 이색 칵테일도 인기다. 특히 전통주를 활용한 칵테일이 눈길을 끈다. 3월 문을 연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 ‘오울’은 아예 전통주 칵테일과 한국 술을 내세운 ‘전통주 바’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에서 한국의 전통주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곳의 유승정 바텐더는 “오울의 타깃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한국 고유의 전통주를 어떻게 더 편하게, 그리고 멋있게 즐기도록 할 수 있을지를 기획 단계부터 고민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을 선보이게 되었다”며 “같은 쌀로 만든 소주라도 증류의 과정과 기간 등에 따라 목 넘김과 맛, 향이 모두 달라 칵테일로 만들었을 때 무척 흥미로운 풍미를 낸다”고 덧붙였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 ‘오울’의 내부. 포시즌스호텔 서울 제공
집에서 마시는 것도 물론 좋지만, 우아한 분위기에서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시고 싶다면 역시 칵테일 바를 찾아가는 것이 옳다. 전문적인 바텐더가 만드는 칵테일은 그 자체로 명품이다. 바를 처음 이용하는 이라면 특유의 무겁고 정중한 분위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용기를 내보자. 전재구 회장은 “일단 바에 앉아서 바텐더와 대화하는 것이 칵테일 즐기기의 시작”이라며 “바텐더는 고객의 취향대로 원하는 음료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니 주저하지 말고 원하는 음료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들어가는 술에 따라, 부재료로 사용하는 음료에 따라 천차만별로 맛과 향이 달라지는 술인 만큼, 취향을 제대로 바텐더에게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바에 앉으면 바텐더와 소통하며 원하는 칵테일을 먹을 수 있다. 루이스 바의 내부. 전재구 제공
자리에 앉으면 일종의 착석 비용인 ‘시트 차지’를 내야 하는 칵테일 바도 있다. 하지만 이를 ‘웃돈’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임병진 바텐더는 “시트 차지는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시트 차지를 받는 곳이라고 해서 비싸고 불편하다는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트 차지는 곧 서비스 비용이고, 이를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경험을 전달해줄 것이니, 바텐더를 믿고 그 바 자체를 온전히 즐기라는 얘기다.
와인 한병은 부담스러울 때, 소주는 아무래도 안 내키고 위스키는 힘들 때 형형색색 맛도 향도 다양한 칵테일만한 것이 없다. 나에게 주는 하루의 ‘셀프 보상’으로, 낮에 죄책감 없이 한잔 달라고 하기에도, 배부를 때 안주 없이 간단하게 마시기에도 좋은 칵테일은 지금 같은 계절에 완벽한 한잔이 아닐까.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