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멍게 농사가 흉작이다. 국내 멍게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통영의 경우 작년보다 생산량이 60~70%나 줄었다고 한다. 바닷속에서 멍게가 달린 줄을 끌어올리면 절반 이상 비어 있는 황량한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종종 보인다. 고수온이 원인이라는데 바닷물 사정이 어찌 바뀐 걸까. 기후 위기와 함께 우리 식탁 풍경이 바뀌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맘때 멍게 양식장 근처에 가면 시퍼렇게 넘실대는 바닷물 사이로 장미꽃이 핀 듯 아른아른한 주황색 멍게밭이 인상적이었는데…. 멍게가 주렁주렁 달린 줄을 걷어 올리면 그 꽃다발이 특유의 알싸한 향기와 함께 한순간에 확 하고 안겼던 기억이 난다.
멍게를 5월 바다의 꽃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멀리서 보면 꽃이 핀 듯 울긋불긋 바다를 물들인 모습이 마치 네덜란드 튤립 축제의 바다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멍게는 주황색 돌덩어리 같은 외모를 지녔다. 거친 산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흙이 많이 붙은 단단한 돌. 이렇게 억세 보이는 멍게는 두 뿔이 달려 있는데 하나는 입이고 하나는 항문이다. 이 뿔 외에도 기능이 없어 보이는 수많은 작은 뿔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 작은아들은 이 모습을 보고 바다에서 여드름 제일 많이 난 사춘기 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뿔 덕분에 멍게의 영어 이름은 ‘바다의 물총’(sea squirt)이 되었다. 서양에선 신기해하기만 하고 잘 먹지는 않는다.
우리가 멍게를 먹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이후 멍게 양식을 본격화하면서부터다. 예전엔 멍게가 모두 자연산이어서 귀한 취급을 받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운 좋아야 가끔 맛볼 수 있는 특식으로 여겨졌다. 좋은 건 다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 멍게는 오히려 먼저 양식에 성공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드문 외제 해산물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멍게 양식이 발달해 국산 멍게의 시대를 연 지 오래다.
멍게 제철은 늦봄부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멍게를 찾는 이유는 수온 상승과 더불어 멍게의 단맛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5월 멍게는 그야말로 달큰함이 살아 있어 최고로 쳐준다. 멍게 특유의 몽글몽글 살살 씹히는 그 맛은 5월부터가 시작이다.
두개의 뿔과 수류탄 같은 모양, 그리고 오렌지빛 알록달록한 외모는 흡사 먹지 못할 외계 생명체처럼 생겼지만 두 뿔을 자르고 배를 갈라 안쪽의 주홍색 살을 맞이하면 비로소 멍게의 진가를 알게 된다. 특유의 민트향이 코를 찌른다. 씹으면 꽃향기와 더불어 감칠맛과 단맛이 같이 올라오는데 이것이 멍게의 진면목이다. 다당류인 글리코젠이 많아지는 5월의 멍게는 더없이 달다.
속살을 끄집어내서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을 찍어도 좋지만 참기름과 간장, 마늘을 섞은 기름간장을 곁들여보자. 멍게와 참기름이 의외의 조합은 아닌 게 멍게비빔밥으로도 증명이 되는데 참기름만큼 멍게의 단맛을 증가시키는 부재료가 또 있을까 싶다. 멍게비빔밥에는 5월부터 맛있어지는 영양부추를 잔뜩 넣고 같이 비벼도 좋겠다.
멍게와 기름의 궁합이 좋은 건 멍게로 만든 부침개로도 설명이 된다. 밀가루에 찬물 붓고 양파 송송 썰어 넣고 살살 다지듯이 두드린 멍게 속살을 넣고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지져낸다. 이 멍게부침개는 청양고추를 넣은 초간장과 너무 잘 어울린다. 경상도 쪽 바닷가에선 멍게튀김을 별미로 먹는다고 하니 멍게와 기름의 상관관계는 이미 원산지에서부터 증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늘 초고추장만 찍어 먹던 멍게에 색다른 시도를 해보자. 올해 부쩍 귀해진 멍게, 앞으로 더 귀해질 멍게의 다양한 맛을 아마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