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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야기 어떻게 시작할까

등록 2022-04-22 09:59수정 2022-04-22 18:36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스토리텔링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재밌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주인공이 이런 사람을 만나면 된다. “당신 인생에 곧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인생의 큰 변화. 지나가던 예언자나 산신령도 좋고, 탑이니 죽음이니 운명의 바퀴 같은 타로 카드를 읽어주는 사람도 좋다. 잘 알던 사람이 뜬금없이 그 말을 해줘도 좋다. 기다리던 변화일 수도, 바라지 않던 변화일 수도 있다. 아무튼 첫머리에 이런 말을 들으면 뒷이야기는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이 대목을 ‘이야기의 변곡점'이니 ‘구성점’(플롯 포인트)이니 ‘모험에의 소명'과 ‘조력자'니, 여러 가지로 부른다. 나는 ‘흰 토끼'라는 용어를 좋아한다. “이야기의 처음에서 흰 토끼를 만나야 합니다.” 예비작가분들께 창작에 대해 설명할 때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흰 토끼 이야기다. “앨리스, 너는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며 “늦었군”이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호기심이 든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가고 곧이어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흰 토끼가 아니라 흰 부엉이는 어떨까. 불우한 소년 해리 포터는 마술학교 호그와트 입학증을 물고 온 부엉이를 만난다. 거미도 있다. 소심한 십대 소년 피터 파커는 방사능 거미를 만난 후 스파이더맨이 된다.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 오만한 천재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떤 사고를 당한 후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도 사람과 만나는 편이 창작자는 마음이 놓일 것이다. 말 상대가 나오지 않으면 이야기 첫 부분을 독백이건 방백이건 의식의 흐름이건 주인공 혼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블랙 위도우〉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자. 가족이 준 목걸이 또는 우편물만 있어도 흰 토끼 역할이 가능하지만, 굳이 그 물건을 빼앗기 위해 자객이 찾아와 이야기를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블 영화의 예를 들었지만 옛날 작품에도 흰 토끼는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의 이른바 4대 비극 〈햄릿〉과 〈맥베스〉와 〈리어 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머리를 훑어볼까. “나는 너의 아버지인데 네 숙부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고 중얼대는 수상한 유령을 만난다거나, “당신은 야심을 숨기고 있지만 사실 왕이 될 운명”이라고 외치는 세 마녀를 우연히 만난다거나,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왕국을 나눠주고 셋째 딸을 쫓아냈다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충간하는 충신이 있다거나,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 운명의 상대를 하필 원수의 집안에서 만난다거나 한다.

그러니 독자나 관객을 사로잡으려면 매력적인 흰 토끼를 창조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저런 영감을 받아보시라고 예제를 코딩하여 제공하겠다. 일러스트의 정보무늬(QR코드)를 찍어보시길. 그러면 흰 토끼를 만난 다음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자.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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