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되지 않고 규칙 없는 아름다움, 예상할 수 없고 그래서 언제나 경이로운 ‘자생하는’ 아름다움이 선인장 군락지에 있었다. 사실상 모든 예술이 가닿고 싶어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움이.
제주에 다녀왔다. 5월 304낭독회가 제주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달로 아흔세번째를 맞은 304낭독회는 작가들이 일꾼이 되어 꾸려오고 있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낭독회다. 2014년 9월 처음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8년간 거르지 않고 계속해왔다. 한달에 한번, 어떤 단체나 기관의 지원 없이 이 낭독회가 계속될 수 있는 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꾸려나간 덕분이다.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가지고 오는 글들도 직접 쓴 원고에서부터 좋아하는 책의 발췌문이나 노래, 연극까지 경계가 없다.
낭독회 하루 전날 먼저 제주에 도착했다. 거의 3년 만이었다. 제주에 관한 장편소설을 쓰고 몇번 내려갈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마음은 먹지 못했다. 팬데믹 상황 때문이기도 했고 너무 중요하고 마음을 많이 준 대상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게 되는 머뭇거림 때문이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점심을 먹은 뒤 곧장 월령리로 향했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를 돌아보는 게 이번 제주행에서 내가 계획한 유일한 여정이었다.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제주일주도로를 달리다가 충동적으로 애월 쪽으로 빠졌다. 좀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오래 바다를 보고 싶었다. 날이 더워서 마치 여름처럼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바다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해 전 제주 부속 섬에 있는 레지던스에서 머물 때 마치 도시의 잡풀처럼 제주에는 선인장이 곳곳에 피어 있다는 걸 알았다. 제주의 식물들은 참으로 이색적이고 특별하지만 그렇게 어디서나 ‘자생’하고 있는 선인장들은 제주라는 섬과 아주 잘 어울렸다. 제주어로 선인장을 ‘떡곳’이라 부르는 것도 근사했다. 제주어는 대상의 실체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강렬한 실감을 특징으로 하는데 ‘떡곳’도 그랬다. 꼿꼿하게 강하게 적당한 타협이나 물러섬 없이 자기 자신을 힘차게 유지하고 있는 식물이 그려졌다.
우리 집에도 당연히 선인장들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식물 중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갈 무륜주, 괴마옥과 백도선, 살을 발라낸 생선뼈 같은 모양이라 해서 이름이 붙은 ‘피시 본’, 왕성한 성장을 하고 있는 촐라 선인장, 스투키, 여러개의 다육식물. 관엽식물처럼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두면 조용히 잘 자라는 편이라 부담 없이 기를 수 있는 식물들이다. 이들의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큰 관심’이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쯤 한번씩 물을 주고 당연히 겨울에는 물을 말린다. 그렇게 최대한 자연 그 상태로 두는 것이 선인장을 살리는 길인 셈이다.
월령리에 도착해 포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풍력발전기들이 보였다. 수심이 얕은 방파제 안쪽 바닷물은 완전한 에메랄드색이었고 물살이 거의 일지 않았다. 거기서 사람들이 스노클링과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열살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들이 낚싯대를 잡고 있다가 “고기 물었어?” 하는 엄마 질문에 “아니, 하나도 안 물어” 하고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수면은 너무 맑아서 그 아래 물고기들이 다 들여다보였다. 아이들이 정성껏 내려보낸 미끼는 물지 않고 수초들 사이에서 영리하게 먹이를 구하고 있었다.
올레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자 선인장 군락이 눈에 들어왔다. 줄기가 마치 손바닥처럼 넓적해서 손바닥선인장으로도 불리는 백년초들이었다. 밭담을 쌓아올린 넓은 땅에 이중 삼중으로 고랑을 만들며 자라고 있는 선인장들, 해안의 검은 현무암 바위를 부드럽게 타고 오르고, 인동덩굴이나 담쟁이 같은 식물들과 함께 담벼락을 꾸미며 해안가의 갯국과 어우러져 바다가 끝나고 육지가 시작되는 경계를 늠름하게 그려 보이는 선인장들. 그 일괄되지 않고 규칙 없는 아름다움, 예상할 수 없고 그래서 언제나 경이로운 ‘자생하는’ 아름다움이 선인장 군락지에 있었다. 사실상 모든 예술이 가닿고 싶어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움이.
선인장길을 다 걷고 나자 햇볕에 얼굴이 타서 따가웠다. 더위를 피할 겸 선인장주스를 파는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는데 카운터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약속의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과거의 어느 날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온 작은 선인장 씨앗이 지금의 월령리를 만든 것처럼 우리의 슬픔과 미안함,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들도 분명 어디선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기대하고 희망하고 믿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것은 외면과 단절로 끝이 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이후의 스텝들까지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낭독회를 진행하는데 무대로 삼은 작은 의자 뒤로는 내내 팽나무가 넓은 팔을 벌리고 있었다. 괜찮다는 듯, 서로 어깨를 겯고 통과하고 있는 우리를 묵묵히 감싸듯. 그곳이 제주였고 그것이 바로 제주의 식물들이었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