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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힘이 센 이야기는?

등록 2022-07-22 18:47수정 2022-07-22 18:50

[ESC]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지금 나는 이야기의 두가지 힘에 대해 생각한다. 이야기에는 밝은 힘도 있지만 또 어두운 힘도 있다. 서양 고대철학을 전공하는 이종환 선생과 책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일베를 하는 이들도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한대요. 타인에 대한 공감을 감정이라 보아 배척한대요.” 김학준이 쓴 <보통 일베들의 시대>라는 책을 이 선생은 내게 추천했다. “그러니 ‘너희는 공감 능력이 없다’고 다그쳐봤자 싸움만 나겠죠.”

솔직히 나는 일베 하는 친구들의 내적 논리가 궁금하지는 않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 때문에 스텝이 꼬인 지식인을 종종 보아온 까닭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한, 카다피 정권과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 철마다 대단한 진리처럼 유행했지만 결국은 사회 일반의 상식이 맞았다. 일베의 주장 역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터이다.

그래도 이 문제는 눈길을 끈다. 공감 능력을 깨우는 것이야말로 이야기의 참된 힘이라고들 하기 때문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에 대해 서경식 선생과 가토 슈이치가 대담을 나누며 한 말이기도 하다.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낯선 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사회를 갈등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믿는 이가 많았다.

예를 들어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일리아스>는 사람이 사람 잡는 전쟁 이야기다. 그런데 <일리아스> 1권에서 거침없던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24권에서 자기가 죽인 헥토르의 아버지를 만나 눈물을 뚝뚝 흘린다. 스물네권에 걸친 여정 끝에 그의 마음에 잠자던 공감 능력이 깨어난 것이다. 이천팔백년 지나 이 작품을 읽는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문학의 효용은 공감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공감 능력을 빼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시온장로 프로토콜>의 역사를 나는 떠올린다. 처음에는 “가톨릭 예수회가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파헤친다”는 옛날 소설이 있었다. 그다음에 주어만 바뀌었다. “프리메이슨이 나쁘다”고도 했고 “유대인이 나쁘다”고도 했다. 유대인을 헐뜯는 버전이 <시온장로 프로토콜>이고 이 떡밥을 문 자가 히틀러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을 소재로 <프라하의 묘지>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또 어떤가. “좌파가, 페미니스트가, 이민자가 이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유행이던데.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니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자”는 고전 작품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하니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며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어두운 이야기다. 이 시대, 어느 이야기가 힘이 셀까?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지켜본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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