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라는 사람들이 반은 사업가가 되어야 하니, 남들이 이 사실을 알기나 할지!” 음악가 베토벤은 1801년 1월의 편지에서 불평한다.
이 편지는 두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하나, 베토벤이 불평은 하면서도 ‘사업가 역할’을 꾸역꾸역 한다는 것이다. 둘, 그 역할을 무척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다. 베토벤 같은 천재도 열심인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지금까지 나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방법에 대해 써왔다. 주사위를 던지건 컴퓨터를 쓰건 ‘오래된 것을 새롭게 조합’하고 조합들 가운데 괜찮은 ‘물건’을 골라낸다. 그런데 ‘좋은 물건’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포지셔닝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련다.
“소비자의 마음에 최초로 입성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 제2위, 제3위 브랜드가 구사할 전략도 있다.” 앨 리스와 잭 트라우트가 쓴 책 <포지셔닝>에 나오는 설명이다. 이 책은 범주를 잘게 쪼개 “한국에서 첫번째”나 “남자 중에 첫번째”로 자리 잡는 방법을 권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길목 장사’를 해보시라는 말씀이다. 물론 길목이 아무리 좋아도 물건의 품질이 떨어지면 손님의 발길이 뜸할 터이다. 하지만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길목에 자리 잡지 않으면 장사는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망한다. 포지션을 잘 잡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
대학에서 예비 작가분들께 강의할 때 나는 감히 나의 경우를 예로 들곤 했다. 포지셔닝 전략은 작가를 소개할 때 쓸모 있다.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나이가 스물아홉이다. 그보다 어린 나이에 활약하는 작가님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최연소 신문삽화가’로 소개되었고, 그 덕분에 재능이 없는데도 있는 척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
작품이 놓일 범주를 다시 ‘포지셔닝’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 시대>를 그렸을 때 ‘학습만화’ 분야는 이미 경쟁이 심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내 작품은 ‘지식만화’로 불렸다. 덕분에 이 분야의 초창기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오해 마시길, 내 솜씨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나처럼 재능이 평범한 사람은 길목 장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드리려 함이다.
드리고 싶은 말씀인즉, 영감 따로 전략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감과 전략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디어를 쥐어짤 때 전략을 함께 세워야 한다. 덧붙일 말씀이 있다. 작품으로나 마케팅으로나 뛰어났던 베토벤조차 “사업가 노릇은 싫다”고 발뺌하지 않았나. 재능 있는 창작자인 척, 아이디어 넘치는 기획자인 척하고 싶다면, 마케팅 전략을 연구한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두는 쪽이 좋을 터이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