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상상 속의 뽑기 기계

등록 2022-12-10 11:00수정 2022-12-10 11:56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좋은 아이디어란 눈길을 끄는 아이디어다.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디어란 무엇인가? 신선한 조합, 불가능한 조합,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조합이다. 핵심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 말은 어렵지만 만들기는 쉽다. 결이 다른 것끼리 억지로 붙여 놓으면 아이러니가 된다. ‘조선’과 ‘좀비’? 〈킹덤〉은 인기 드라마였다. ‘산타클로스’와 ‘여성'? ‘산타 할머니’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참신한 조합을 어떻게 얻을까?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일상과는 반대로 해야 한다. 제임스 웹 영의 추천처럼, 하던 일을 않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떠나지 않고 늘 일하던 곳에서 일하더라도 일상과는 분리해야 한다. 트와일라 타프의 추천처럼, 제의를 치르듯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도 그래서다.

일상에 쫓기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칼럼에서 제안해 왔다, 무작위로 뽑는 방식을. 상상 속의 기계를 생각해 보자. 풍선껌이나 장난감 캡슐을 뽑는 기계다. 뽑기 기계를 수십 개 수백개 구슬로 채운다. 구슬 하나하나에 단어가 적혀 있다. 다음에는 기계를 돌려 구슬을 하나씩 뽑는다. 이렇게 뽑은 두 개나 세 개의 구슬을 잘 엮어보자. 구슬 백 개에서 세 번을 뽑으면 백만 개의 조합이 된다. 이 가운데 몇 가지는 눈이 번쩍 뜨이는 조합이 아닐까? 이 방법으로 “숲은 밤의 고향”이나 “세계는 햇빛의 이야기” 같은 시 구절을 쓸 수도 있고, “고양이의 평화를 돕는 매장” 같은 사업 아이템을 짤 수도 있다.

핵심은 ‘무작위'로 뽑아야 한다는 거다. 연상하는 대로 고르면 늘 나오는 조합만 나오게 되어 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회의하기 전 모든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백 개가 넘는 아이디어를 일단 써 내려 간다고 했다. 그런 다음, 처음 백 개는 무조건 버린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란 백 개까지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회의할 때는 101번째 아이디어부터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 과정을 줄여주는 것이 뽑기 기계다.

무작위 뽑기 기계를 실제로 만들기는 번거롭다. 나는 코딩을 이용해서 뽑기 기계를 만들었다(칼럼에 몇 차례 공개했다). 어떤 분은 생각한다, 코딩을 한다니. 요즘 ‘핫’한 인공지능 창작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사람의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해 나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짰다. 무작위로 뽑아놓은 조합 가운데, 무엇이 참신한지, 무엇이 참신하지 않은지 결정하는 것은 아직은 사람의 몫이다. 몸값 비싼 일은 기계가 하고, 싸구려 일은 사람이 하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창의적인 분야에 아직 사람이 할 일은 남아 있다.

김태권 만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눈으로만 담아온 수많은 새벽 별빛 뒤에 지리산의 일출이 왔다 [ESC] 1.

눈으로만 담아온 수많은 새벽 별빛 뒤에 지리산의 일출이 왔다 [ESC]

그윽한 가을 정취 짙어지게, 후각 사로잡는 ‘만리향’ [ESC] 2.

그윽한 가을 정취 짙어지게, 후각 사로잡는 ‘만리향’ [ESC]

‘두부 단짝’ 강된장에 라이스페이퍼·치즈 ‘전 부치기’…이게 되네? [ESC] 3.

‘두부 단짝’ 강된장에 라이스페이퍼·치즈 ‘전 부치기’…이게 되네? [ESC]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4.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5.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