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들꼬들하게 절인 멍게살을 고수, 치즈 등과 곁들인 멍게 고수 샐러드. 박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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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게 여러 가지 있지만, 반찬 공짜에 심지어 여러 가지 간단한 요리가 공짜인 문화다. 일단 김치 공짜라는 것에 뒤로 넘어간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의 연기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배가 고파 인상을 쓴다. 가게를 찾는다. 특이한 맛에 엄청 놀란다(눈이 커진다). 이게 전부다. 입가에 기름기를 묻혀가며 밥을 퍼넣는 것도 물론 추가된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의 커진 눈동자다. 그의 눈동자가 압도적으로 커진 건 한국에서 찍었을 때다. “끝도 없이 나오는 요리, 반찬, 게다가 무한 리피루!”
이맘때 멍게 농사 한창
일본인들은 한국 횟집에서도 놀란다. 회의 양이 많은 데 놀라고 이른바 곁들임의 가짓수에도 놀란다. 그 중에 멍게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국 횟집에서는 멍게 제철이면 몇 점이라도 상에 올린다. 문제는 멍게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일본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설마? 진짜다. 멍게는 일본 북부 지역 일부에서나 먹는다. 평생 한 번도 안 보고, 안 먹어본 사람이 흔하다는 얘기다. 저 맛잇는 멍게를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 어쩌랴. 그래서, 일본인 관광객 많이 오는 횟집에서는 멍게를 내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내 평생 멍게처럼 싸고 맛있는 해물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멍게 기르는 건 농사 같다. 줄에 매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려서 기르는 건 굴과 비슷하다. 제철에 건져 올리는 광경을 보면 농사구나 싶다. 알알이 빨갛게 잘 익은 멍게가 줄따라 줄줄이 달려올라온다. 작업장에서 아주머니들이 하나씩 떼어서 씻고 분류하고 포장한다. 다른 줄에서는 배를 갈라 살만 발라낸다. 도시 사람들 먹여 살린다고 지금 저 바다에서는 멍게 농사와 갈무리가 한창일 것이다.
한국 식재료로 서양 음식을 만드는 이른바 퓨전이 인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 바닥에 발 넣은 지 오래다. 서양 음식을 하는데, 가급적 현지 재료를 쓰는 게 나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로컬푸드니 뭐니 하는 걸 떠나서 원래 그리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맛도 좋고 재료비도 싸고.
하여튼 멍게 갖고도 이것저것 해봤다. 서양에서 잘 먹지 않는 재료다보니 요리법 가져다 쓰기도 힘들다. 이탈리아에서는 회를 먹기도 하는데, 대개는 해산물을 요리한다하면 냅다 삶거나 끓여버린다. 멍게는 열이 닿으면 그다지 맛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유의 향이 급감한다. 익힌 것도 물론 고유의 맛이 있긴 하다. 그래도 날것이 우위다. 그러니 멍게 먹는 법은 역시 회다. 싱싱한 걸 그냥 먹거나 초장,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내가 쓰는 방식은 설탕절임이다. 멍게 살을 발라낸 후 설탕을 듬뿍 쳐서 4시간 이상 냉장한다. 물엿을 써도 된다. 살이 훨씬 꼬들꼬들해지고 식감이 진짜 끝내준다. 자, 이렇게 절인 멍게로 특별 안주를 만들어보자.
바질이나 파슬리를 쓰는 지중해식이다. 양파를 얇게 썰어서 찬물에 담가둔다. 아린 맛이 빠진다. 바질이나 이탈리안 파슬리를 넉넉히 준비한다. 고수를 써도 오케이. 이때 좋은 올리브유가 있어야 한다. 레몬즙도 준비한다. 올리브유 둘에 레몬즙 하나의 비율로 거품기나 요리용 붓으로 휘저어 끈끈하게 만든다. 다진 바질이나 이탈리안 파슬리(너무 곱지 않게, 거칠게 다지시라)를 넉넉히 넣고 절인 멍게살을 버무린다. 크림치즈나 생 모차렐라를 같이 넣어도 좋다. 가루치즈나 마늘은 잘 안 어울린다. 맥주나 하이볼, 화이트와인 안주로 추천한다. 차가운 소주 칵테일에도 물론 좋다. 그냥 소주에는? 그거야 초장 찍는 게 국룰이죠. 멍게는 배를 따서 살만 꺼내어 두니, 죽은 놈일 텐데 입에 넣으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제 스스로 살이 움직일 리 만무한데, 마치 입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멍게 만원 어치의 행복
멍게 철이 빨라졌다. 이것도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수온이 빨리 올라가니 멍게도 시장에 일찍 나온다. 예전에는 ‘아이 더워’ 할 때 멍게가 제일 쌌다. 요새는 더워진다 싶으면 멍게가 쪼그라드는 것 같다. 멍게를 살 때는 봉지에 든 건 별로다. 간편하지만 선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양도 적다. 비닐봉지의 볼록렌즈 효과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재래시장에 가서 직접 사는 게 좋다. 어물전 주인이 배를 갈라준다(칼과 도마의 위생이 복불복이다만). 아니면, 사가지고 와서 배를 째라. 멍게 안에 든 건 육수가 아니라 바닷물이니 아까워하지 말고 버린다. 배를 가위나 칼로 푹 찌르면 바닷물이 뿜어져 나와 옷을 버린다. 먼저 큰 볼에 찬물을 받아놓고, 멍게를 그 안에 넣어 잠긴 상태로 배를 가른다. 가위를 쓰는 게 좋다. 유튜브를 참고하라. 꺼낸 멍게살을 씻으면 뭔가 영양가나 맛도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감하게 씻어라. 바락바락 문질러 씻을 것까지는 아니지만 흐르는 물에 충분히 헹구셔도 된다. 씹으면 맛이 나온다.
이런 수고를 더는 법도 있다. 인터넷으로 깐 멍게를 사는 거다. 양도 많고 손질 시간도 거의 필요없다. 요즘 시세가 깐 것 기준으로 500g에 1만원 밑이다. 배송료 별도다. 500g이면 비빔밥, 샐러드나 횟감 안주로 2~3인분 나온다. 택배를 받아 오늘이나 내일 먹을 것이라면 포장을 뜯지 말고 냉장실, 아니면 한번 헹궈서 냉동실로 보낸다. 세상 싸고 맛 좋은 우리 바다 3총사로 꼽는 게 굴, 홍합, 멍게다. 오늘은 멍게 안주다. 맥주 캔 따세요.
멍게 고수 샐러드 레시피
재료: 멍게살 300g, 레몬즙 2큰술, 올리브유 좋은 것 4큰술, 고수 약간, 설탕 4큰술, 후추 조금, 버펄로 모차렐라 치즈 또는 부라타 치즈 반 개.
1. 멍게살에 설탕을 뿌려 살짝 섞고 냉장고에 4시간 이상 둔다.
2. 차가운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섞어 거품기로 저어 소스를 만든다.
3. 고수는 뿌리까지 쓴다.
4. 멍게살에 소스 뿌리고 부라타 치즈, 고수를 곁들여낸다.
박찬일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게 매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