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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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작은 공항에서 겪은 일이다. 내 가방을 엑스레이로 보더니 외국의 직원분이 껄껄 큰소리로 웃었다. “이거 스캐너냐, 검색대에서 일한 지 한참인데 스캐너는 처음 본다.” 자료를 찾으러 외국에 갔을 때였는데, 그림 마감할 것이 있던 나는 스캐너를 싸 짊어지고 여러 나라를 다녔다.
숫제 원고 마감을 위해 다른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작가가 있다. 장소를 바꾸면 영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경감 메그레> 시리즈를 쓴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조르주 심농은, 타자기 하나 들고 보트에 올라 바다에 닿을 때까지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고 했다. 며칠이고 몇 주고 이동하며 타자기를 두드리면 소설이 한 권씩 탄생했다나. 심농의 왕성한 창작 비결로 종종 이야기되는 일화다.
빈센트 반 고흐나 폴 고갱의 여행은 유명하다. 반 고흐는 네덜란드·파리·아를로, 고갱은 브르타뉴·마르티니크·타히티로 옮겨 다녔다. 두 사람 모두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생활비 탓에 이사 다녔다는 것 같다. 그래도 결과를 놓고 보면, 여행 덕분에 영감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글을 나는 생활인 독자님과 함께 읽기 위해 쓴다. 생활인은 원한다고 아무 때나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니 대안을 찾아보자.
장소만 바뀐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은 아니다. 소설로도 영화로도 유명한 〈샤이닝〉을 보면, 외진 산장까지 들어가서도 원고가 안 풀려 미쳐버린 작가가 나온다. 물론 내 처지가 산장에 가지 못하는 생활인이다 보니, “저건 신 포도”라고 푸념하는 여우처럼 토라져 〈샤이닝〉을 걸고넘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집 하나에 머물며 이 방 저 방을 쓰는 작가분도 있다. 방 하나를 쓰며 이 책상 저 책상을 쓰는 분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집도 방도 넉넉하지 않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동네 카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작업을 한다. 뒷산 곳곳을 옮겨 다니며 글을 쓰기도 한다. 휴대폰의 음성인식 앱을 이용하면 편하다.
장소도 장소지만 작업 환경의 변화가 본질인 것 같다. 이 작품을 할 때는 이 음악을 듣고 저 작품을 할 때는 저 음악을 듣는다는 작가도 있다. 이 모두는 제임스 웹 영의 아이디어 원리, “아이디어란 오래된 요소의 새로운 조합”이라는 원칙과 결이 같다.
늘 쓰던 단어만 다르게 이어붙여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혼자 하는 브레인스토밍’ 툴을 사용했다. 예전에 코딩해서 공개했던 프로그램이다. ‘아이디어’라는 낱말을 입력하니 ‘아이디어와 장소’, ‘아이디어와 모바일’ 등등 열쇳말이 나왔다. 생각할 거리가 나오니 글은 이내 풀렸다. 아이디어는 필요하지만 여행은 떠날 수 없을 때, 여러분도 큐알코드로 접속해보시길.
김태권 만화가
그림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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