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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 오라’ 마오리…캠퍼밴 타고 만나는 뉴질랜드의 뿌리 [ESC]

등록 2023-03-11 19:32수정 2023-04-08 10:16

지구를 지키는 여행 뉴질랜드
마오리족 유적지와 화산 지형 등을 볼 수 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
마오리족 유적지와 화산 지형 등을 볼 수 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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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가오는 여름 휴가에 뉴질랜드 로드 트립을 가겠다고,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몇 해 전, 뉴질랜드에서 캠핑했던 기억이 전두엽을 스쳤다.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500달러에 구매한 1998년식 중고 승합차를 타고 북섬 오클랜드부터 남섬 퀸스타운까지의 여정을 복기할 기회였다.

친구는 캠퍼밴을 빌린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캠핑카 여행 기반이 잘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캠퍼밴 렌털 서비스도 많다. 잘 곳은 캠핑장 예약 앱 캠퍼메이트(CamperMate)를 이용해 정하면 된다. 캠퍼메이트는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순으로 홀리데이파크와 캠프장을 보여준다. 뉴질랜드식 종합 야영장인 홀리데이파크에는 텐트를 치거나 캐러밴, 캠퍼밴 등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고, 공용 주방과 샤워실, 세탁실 등이 구비돼 있다. 배낭 여행자용 숙소를 마련하고 있는 곳도 종종 있다.

마오리족 문화 엿보는 북섬 여행

뉴질랜드 남섬 동쪽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캠퍼밴을 픽업해 남섬만 여행할 예정이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뉴질랜드 여행의 시작은 북섬이라며 설득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문화를 살펴보려면 북섬 여행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처음 내게 마오리 문화를 알려준 건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다. 그는 뉴질랜드 사람이자 나를 이곳으로,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한 장본인이다. 늘 ‘키아 오라’(Kia Ora)라며 첫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이는 마오리어로 따뜻한 환영의 인사이자 건강과 응원의 의미를 담은 말이다. 백인이지만 종종 마오리어를 알려주며 뉴질랜드의 뿌리가 마오리족이라는 걸 늘 상기시켜주었다.

역사학자들은 마오리인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시기를 약 1천년 전이라 추정한다. 1769년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뉴질랜드를 발견한 이후 유럽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고, 1840년부터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47년, 뉴질랜드는 완전한 독립을 맞이했다. 사실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뉴질랜드라는 국호부터가 유럽인이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원래 원주민이 부르던 이름은 ‘아오테아로아’(Aotearoa)로, 2022년 7월부터 뉴질랜드 의회에서는 국호 변경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아오테아로아는 길고 흰 구름이라는 뜻. 뉴질랜드 하늘에는 손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길고 흰 구름이 떠다닌다. 이를 보고 지은 이름일 테다.

북섬 곳곳에서는 마오리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화산 트레일을 걷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대표적이다.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마오리족의 중요한 문화적 가치와 자연 유산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마오리족에게는 이 국립공원이 중요한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마오리 전설에 의하면, 제사장이 이곳에서 눈보라를 만나 선조의 고향인 폴리네시아 섬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더니 불이 건너와 산이 폭발했다. 지금도 화산 활동이 계속되는 활화산과 특이한 화산 지형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뉴질랜드 남섬 크롬웰에 있는 한 캠핑장.
뉴질랜드 남섬 크롬웰에 있는 한 캠핑장.

마오리족 문화를 살펴보는 것 말고도 북섬에서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에스크데일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것. 북섬 동쪽 호크스 베이에 자리한 에스크데일은 에스크 강을 따라 형성된 지역으로, 많은 포도밭과 와인 양조장, 낚시터 등이 있다. 호크스 베이는 뉴질랜드 최초 와인 산지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에스크 강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역사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인이 처음으로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고 글랜베일 와이너리를 설립한 이후 유서 깊은 와인 명소가 됐다.

호크스 베이에서 나는 포도는 비탈에서 햇빛을 고루 받으며 자란다. 긴 일조 시간, 바닷바람 등으로 포도의 풍미가 깊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이 포도로 여전히 90년 전과 같은 핸드메이드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뉴질랜드는 정부 주도하에 2019년부터 지속가능한 와인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2050년 탄소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각 양조장에서 푸드마일(식료품이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이나 탄소 배출량을 감시하는 탄소 인증 제도를 구축했다.

농장 체험하며 만나는 진짜 뉴질랜드

북섬을 충분히 돌아봤다면 웰링턴에서 남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자. 3시간 3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남섬의 시작, 픽턴에 도착한다. 페리 편도 비용은 약 5만원, 차량을 실으면 11만원 정도 추가된다. 여행 일정이 넉넉하다면 뉴질랜드 농장 체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뉴질랜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보유한 ‘워홀러’들이 북적대는 곳이기도 하고, 농장 체험을 하며 숙식을 무료로 해결하는 국제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우프(WWOOF)가 활발한 나라이기도 하다. 여행자는 농장에서 일하며 현지인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엿볼 수 있기도 하고 농가는 일손을 빌릴 수 있다. 남반구라 우리와 계절인 반대인 뉴질랜드에선 남섬 기준 12월부터 농장 시즌이 시작되는데, 체리를 가장 먼저 수확한다. 2월부터는 사과, 그다음은 포도 순이다.

픽턴에서 차로 9시간 거리인 크롬웰은 과수 재배 지역으로 유명하다. 로컬 휴양지인 퀸스타운과 와나카 사이에 자리한 동네라 농장 체험을 마치고 곧장 휴양을 떠나기에도 좋다. 마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일손이 필요한 농장과 여행자나 워홀러를 연결해준다. 운이 좋아 일거리가 있는 농장과 연락이 닿으면,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여행자는 농장에서 일하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현지인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고, 농가는 일손을 빌릴 수 있는 시골의 지속가능한 대안이라 볼 수 있다. 친구의 여행 일정을 짜주며 내내 뉴질랜드 여행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지속가능한 여행이었음을 깨달았다. 지속가능한 여행이란 결국 그곳의 환경과 사람,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알던 세상이 얼마나 작은가를 깨닫는 여정일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나는 지속가능 포인트

―캠퍼밴 예약은 ‘모터홈 리퍼블릭’(www.motorhomerepublic.com)이라는 사이트를 참고해보자.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캠퍼밴 업체를 소개해준다.

―‘클래식 뉴질랜드 와인 트레일’은 주요 와인 산지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투어다. 네이피어부터 헤이스팅스, 호크스 베이를 지나 남섬 블레넘까지 5일 동안 총 485㎞를 이동하며 와이너리를 방문한다. 뉴질랜드 관광청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마오리족의 문화를 더 깊이 살펴보고 싶다면 오클랜드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타우랑가와 로투루아에서 시간을 보내보자. 화산지대라 온천이 발달했다. 머드 스파, 유황 온천 등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박진명 <피치 바이 매거진> 에디터

지속 가능한 여행 매거진을 만든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수영장 없는 호텔을 이용하는 등의 소소한 실천이 지구를 지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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