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방콕의 미쉐린 식당 ‘사완’에서 어스 셰프가 익힌 오징어에 소스를 붓고 있다.
올해 8월은 아빠의 60번째 생일이 있는 달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타이(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였던 내가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은 음식이었다. 무엇보다 낯선 음식을 어려워하는 부모님이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길 바랐다. 여기는 미식의 나라니까.
여행지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것만큼 그곳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고 창의적인 면면을 발견하는 근사한 경험은 없다. 2023 미쉐린 가이드 타이 편에 소개된 식당은 모두 35곳이었고 그중 15곳이 방콕에 있다. 길거리 음식부터 왕실 요리, 일식, 유러피안 음식까지 현지 셰프가 타이식으로 재해석한 다양하고 독특한 미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레스토랑에게 수여하는 그린 스타에는 3곳(신규 2곳, 유지 1곳)이 선정됐는데,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하오마는 타이 최초의 도시 농장이자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으로 방콕 중심부에서 인도 정통 요리를 선보인다.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한 성장’(Grow to Give back)이라는 철학으로 유기 폐기물의 70%를 퇴비로 만들어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고 나머지는 물고기 먹이로 전환한다. 또, 지속 가능한 농업의 일환인 아쿠아포닉(양식업과 수경법을 결합한 방식)을 통해 40여종의 허브와 채소, 과일을 식당 안에서 재배한다. 농장에서 기른 신선한 채소를 식탁에서 바로 먹는 ‘팜투테이블’(Farm-to Table)에서 발상을 전환해 식탁을 농장으로 가져온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하오마의 매력을 경험하는 건 다음으로 미뤘다. 아버지께 타이 정통 요리를 맛보여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미쉐린 식당으로 선정된 ‘사완’을 선택했다. 사완은 타이말로 천국을 뜻하는데 지난해 이곳의 셰프가 된 이의 이름은 어스(Earth), 지구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845㎞ 떨어진 푸껫에서 나고 자란 어스 셰프는 사완의 정체성인 타이 전통 요리에 통통 튀는 창의성을 더해 젊은 패기와 감각으로 메뉴를 구성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열대의 꽃 그림이 그려진 황금색 벽지가 양쪽 벽을 채우고 있었고 천국을 연상케 하는 구름 모양의 금속 장식이 시선을 압도했다. 토요일 저녁 매장 안 6개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우아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어색해진 공기는 잠시, 어두운색의 나무 테이블에 모인 우리 가족은 직원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환대에 금세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완의 코스는 아뮤즈 부시(한입 크기의 전채 요리)를 포함해 총 9가지였다. 생식, 발효 요리, 삶은 요리, 미앙 요리(한입에 먹는 작은 요리), 볶음 요리, 카레, 디저트 등이 차례대로 나왔다. 가장 입맛에 익숙하면서 흥미로웠던 코스는 발효 방식으로 만든 쌀국수였다. 태국 남부 지역의 관문인 수랏타니에서 잡아 올린 민물 새우의 다리가 시선을 끌었고 먹기 좋게 자른 새우 살과 각종 채소, 쌀국수, 생선 내장을 발효시킨 남부식 타이플라 소스를 섞어 먹었다. 민물 새우의 훈연된 향, 피시소스의 꼬릿한 향과 짠맛이 잘 어우러졌다. 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양의 쌀국수를 젓가락에 돌돌 말아 씹어 삼키고는 계속해서 입맛을 다실 정도로 감칠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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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남부 지역 라농(Ranong)에서 낚은 오징어를 활용한 찜 요리가 나왔을 때, 어스 셰프가 나타났다.
“신맛과 단맛, 짠맛, 매운맛 모두 느낄 수 있는 타이 요리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는 음식을 소개하며 살짝 익힌 오징어 위에 소스를 부어 주었다. 소스는 솜사와 솜 제드, 칼라만시, 라임 등 4가지 감귤류 과일을 베이스로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건오징어, 건새우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완성했다고 했다. 지난해 그의 ‘방콕 포스트’ 인터뷰를 보면, 그의 요리는 대부분 고향인 푸껫과 학창 시절을 보낸 말레이시아 페낭, 졸업 후 여행했던 타이 북부 치앙라이 마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치앙라이를 여행하며 방문한 식당에서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요리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문득 깨달으며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 그의 가족은 푸껫에서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코코넛 수프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완성했다고 했다. 코코넛 워터와 야자심(야자나무의 줄기 속 먹을 수 있는 눈), 샬롯을 넣어 소금에 절인 소고기 육회를 으깨 먹는 요리였다.
모든 코스가 끝나고 난 뒤 식당 매니저가 작은 케이크를 들고 왔다. 예약 당시 옵션 사항에 ‘아빠의 60번째 생일 기념’이라고 남긴 덕분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겐 방콕이 효도하기 좋은 도시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방콕의 지속 가능한 포인트
-앞서 소개한 레스토랑 사완은 타이 전통 요리를 현대식으로 계승한다는 데 지속 가능한 의미를 발견했다. 어스 셰프는 유기농사를 짓는 현지 농부와 함께 긴밀히 협력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셰프는 흙을 배워야 하고, 농부는 맛을 알아야 한다’는 다짐도 함께.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방콕답게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오른 노포도 많다. 그중 룸피니 공원 인근에 있는 폴로 프라이드치킨을 추천한다. 전기 통닭처럼 구운 치킨 위에 튀긴 마늘을 잔뜩 얹었다.
-아리역 근처에 있는 ‘옹통 카오소이’ 역시 빕구르망에 선정된 음식점. 타이 북부 치앙마이의 음식인 카오소이는 코코넛 우유에 카레를 섞은 달걀면 요리로, 해장에 제격이다.
글·사진 박진명 ‘피치 바이 매거진’ 에디터
지속 가능한 여행 매거진을 만든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수영장 없는 호텔을 이용하는 등의 소소한 실천이 지구를 지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