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일행이 지난해 여름 현포항에서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의 본질은 관계를 떠올리는 데 있어요.” 3개월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OurplanEAT)’의 김태윤 셰프가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 현재, 동식물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지난해 여름에 다녀왔던 울릉도 여행이 생각났다. 울릉도 여행의 시작은 나의 말 한마디였다. 친구들과의 채팅방에서 울릉도 사진 한 장과 함께 ‘여기 가고 싶다’고 올리자마자 일정을 맞추고 배편을 예약했다. 우리 셋은 백패킹 장비가 든 60ℓ짜리 배낭을 하나씩 어깨에 멘 채 경북 포항 영일만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 저동항에 입도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학포야영장. 우리를 이곳까지 이끈 사진 속 그 장소이자 저동항의 반대편 끝자락, 학포마을에 자리한 캠핑장이다. 그곳에 이르기 위해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배차 간격이 무려 2시간. 지도앱에서는 ‘실제 운행 시간에 유의하라’는 무책임한 말만 있을 뿐, 8월의 아침 태양 아래 무작정 기다리기엔 더웠고 시간이 아까웠다. 무엇보다 학포야영장은 사전 예약이 불가능해 현장에 직접 가야 캠핑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 울릉도를 가로질러 차로 30분을 가야 한다니. 현대 사회, 아니 특히 한국 사회에 걸맞지 않은 비효율적 행위였다.
벌써 시계는 아침 8시를 향하고 있었고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택시를 잡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을 마치고, 학포야영장으로 출발했다. 서울 출신이라는 택시 기사는 가는 내내 성토대회를 열었다. 여행자를 향한 현지인의 불친절함, 울릉도 관광 정책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등등.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한편, 시선은 계속 차창 밖으로 향했다. 검푸른 바다가 이어지고 암석의 뚫린 틈을 통과했다.
도로 위 오가는 차가 많지 않았지만 자꾸만 우리를 멈추게 하는 건 터널 안 신호등이다. 왕복 1차로의 좁은 터널 양쪽 끝에는 신호등이 있어 반대편 차와 교대로 지나갈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이 터널의 왕복 1차로를 왕복 2차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마무리 중”이라며 택시 기사는 또 한 번 불만을 토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교차할 수 있는 왕복 2차로의 넓은 터널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다. 오차범위 없이 딱 들어맞는 버스 시간을 예측하는 것처럼 스마트폰 버튼 하나로 많은 게 가능했던 일들이 이곳에선 무용지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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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야영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그날 오전을 공쳤지만, 멀지 않은 곳에 스노클링 포인트가 있다는 정보를 어깨너머로 입수했다. 현포항 행 버스를 탔다. 정확한 위치는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그곳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풍감을 등지고 사이트를 마련했다. 해발 154.2m 높이의 절벽은 바람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위치가 변하는 울릉도의 강한 여름 해도 보란 듯이 막아주었다.
사이트를 정비한 후 스노클링 포인트로 향했다. 적당한 수심의 포인트는 다이빙도 시도하기 좋은 곳이라 친구와 번갈아 가며 다이빙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이때 경찰관이 다가왔다. “뿔소라 캐면 벌금 2천만원입니다.” 울릉도에서는 뿔소라의 산란기인 6월부터 9월까지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이 시기엔 해녀조차 조업 활동이 불가능하다. 거센 조류에 저항하기 위해 껍데기에 뿔과 같은 돌기를 가진 뿔소라는 주로 울릉도와 제주 연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뿔소라는 봄이 되면 푸릇푸릇하게 뒤덮인 감태 밑에 숨어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곤 했다. 지금은 감태가 잘 자라지 않아 기댈 곳 없는 뿔소라는 돌 위에서 마냥 뒹굴다 쉽게 포착되는 추세다. 무분별한 남획과 해수면 온도 상승이 원인이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가장 수심이 깊다는 울릉도의 바다 속을 탐험하며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뿔소라를 여럿 만났다. 예전에 제주에서 해녀가 갓 잡은 뿔소라를 생으로 먹은 적이 있다. 그 맛이 기억나기는커녕 아무도 찾지 못하게 꼭꼭 숨겨주고 싶었다.
울릉도독도해양기지 앞에 있는 스노클링 포인트.
울릉도에서 나는 뭐든 곧잘 해냈다. 바람에 무너진 텐트를 보수하다 잃어버린 팩(텐트를 지면에 고정시키 도구) 대신 나뭇가지를 박는 모험가의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고, 식당 사장님의 불친절도 너털웃음으로 털어버리며 여행자의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했다. 바다에 몸을 담그기 전 산호초에 안전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며 생태계를 생각했고, 성인봉을 오르는 내내 울창하고 광대한 산림 숲에서 나무들의 대화를 들어보려 집중했다. 가랑비가 내렸다 장대비가 내렸다 어느새 맑게 개는 섬의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불평이 없었다. 울릉도는 내게 알려줬다. 여행은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를 떠올리고 알아가고 발견하는 행위라는 것을.
울릉도의 지속 가능한 포인트
-울릉도 성인봉에 오른다면 한국방송(KBS)울릉중계소에서 시작해 나리분지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을 추천한다. 천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이면 천부항에 닿는데, 시원한 물회를 파는 식당들이 기다리고 있다.
-울릉도 국민여가캠핑장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예약 문의는 054-791-6781. 1박 이용 요금은 2만원이다.
-지속가능한 미식연구소 ‘아워플래닛’에서는 ‘로컬오딧세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잊히고 있는 이 땅의 토종 식자재를 알리고 있다. 지난 7월, 울릉도의 자생식물이면서 희귀종이기도 한 식자재를 활용해 타이풍 수프, 새우 세비체 등을 선보였다. 여행과 미식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주시해보자.
글·사진 박진명 ’피치 바이 매거진’ 에디터
지속 가능한 여행 잡지를 만든다. 현지에서 만든 음식을 맛보며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여행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