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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 지고 세상이 연둣빛 푸르름에 물들어갈 때 즈음 전남 장흥으로 간다.
시장 한켠에 모여있는 집들 중 아무 데나 기분 따라 골라 들어가 앉으면 “삼합 드릴까요?” 높은 톤으로 물어보는 아주머니들을 만난다. 특별할 것 없는 가스 불판에 장흥산 한우와 표고, 그리고 키조개의 한 부위인 관자가 얄팍하게 썰려 나온다. 한우를 익는 둥 마는 둥 굽고 표고버섯에는 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을 탁탁 쳐서 발라주며 굽는다. 여기에 옆에서 잠시 불만 쏘여 부드럽게 익힌 키조개 관자를 같이 얹어서 한우, 표고, 관자를 한 입에 즐기는 음식이 바로 장흥 삼합이다.
키조개는 어른 손바닥보다도 훨씬 큰 몸집을 감안해도 관자 크기가 유난히 크다. 관자는 조개가 껍데기를 여닫을 때 쓰는 근육 같은 건데 키조개 이 녀석은 특히 이 근육이 발달돼 있다. 질기기만 한 다른 조개와 달리 키조개 관자는 졸깃하고 맛있다. 키조개는 관자 외의 다른 살 부위들은 요리해 먹기가 어렵다. 뻘을 가득 머금고 있는데다 기관이 너무 많다. 딱히 손질이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다져서 볶아 만두소로 활용하거나 끓여서 소스 재료 정도로나 쓸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가 대부분 관자에 몰리다보니 다른 살은 꽤 많은 양이 버려진다. 아직까진 키조개 가격의 등락폭이 크지 않아서 관잣값만 받아도 충분하기 때문일 거다. 드물지만 키조개를 통으로 샀을 경우 관자는 빼내 손질해 구워먹고 나머지 살은 모래를 머금은 주머니만 떼어낸 뒤 마늘·간장 양념을 해서 볶아먹어도 맛있다. 4월부터 7월 사이 키조개 제철에는 시장에서 관자만 따로 떼어 조롱조롱 엮어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몸통을 벗어난 자투리 신세임에도 이렇게 대접받는 식재료는 키조개 관자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둥글넓적하고 통통한 관자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질겨서 먹기 힘든 딱딱한 근육 조직을 제거해야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잘 보면 다른 살보다 유난히 색이 흰 조직이 눈에 띄는데, 이 부분을 제거하고 나면 관자 모양이 하트가 된다. 다소 수율이 떨어지더라도 이 흰 부분을 제거해야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손질을 잘 했다 해도 너무 익히면 도루묵이다. 오래 가열할수록 뻣뻣하고 질겨지니 관자를 요리할 땐 불 끄는 시간을 늘 신경써야 한다. 신선한 키조개 관자는 회로 먹어도 맛있으니 너무 바짝 익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을 조금 쏘인다고 생각하고 짧게 가열하는 게 중요하다.
질긴 부분을 제거한 관자는 가로로 반 썰어준다.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올리고 바닥면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건드리지 않고 계속 굽는다. 바닥이 거의 갈색으로 변해가고 옆면에 하얀 빛이 돌기 시작하면 뒤집고 10초 뒤 불을 끈다. 한쪽 면을 먼저 바짝 구워 열을 입히고 다른 면은 열을 보충해주는 정도로만 구워내면 실패 없이 완벽하게 보드라운 관자구이가 완성된다.
마늘과 간장, 설탕 약간을 잘 섞어 관자에 버무린 뒤 참기름을 둘러 불고기처럼 구워먹는 것도 맛있다. 여기에 고추장을 더하면 매콤한 양념이 되는데, 양념구이를 할 때는 관자를 깍둑썰기하거나 얇게 편으로 저며주면 좋다.
관자는 불을 쏘여 익혀 놓으면 단맛이 생긴다. 상추나 깻잎 등에 싸먹는 것도 맛있지만 쪽파로 담근 알싸하고 달달한 파김치와도 잘 어울린다. 밥을 하고 뜸 들이는 과정에서 얇게 저민 키조개 관자를 밥 위에 얹어 슬쩍 익힌 뒤 달래간장에 쓱싹 비벼먹는 것도 잊을 수 없는 봄의 맛이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