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 전시 중 버려지는 유리병을 재료로 다시 쓰임을 찾아주는 작업을 하는 박선민 작가의 작품들. 박효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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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 ‘공예주간’이 올해 5월19일부터 28일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렸다. 올해로 6회째인 행사는 매년 시의적절한 주제를 선정해 공예를 친근하게 소개했다.
올해 ‘2023 공예주간’의 주제는 ‘전국공예자랑'이다. 공방과 갤러리·공예숍 등 881곳이 참여하고 전시를 비롯해 공예 체험과 판매, 강연 등 총 1800여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공예와 관련된 행사 중 연말에 열리는 공예트렌드페어와 함께 규모나 의미에서 가치 있는 소중한 축제다. 공예 애호가로서 매년 공예주간을 찾아보고 관심을 기울여왔기에 서울 곳곳에서 열린 행사를 돌아보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찾고 즐기는 행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몇 가지 전시를 추천한다.
전국 젊은 공예가 8인의 공예를 선보이고 있는 케이시디에프(KCDF)갤러리 윈도우 전시. 케이시디에프갤러리 제공.
이번 공예주간에서 첫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크래프트 서울’의 전시가 열리는 ‘신사하우스’다. 51명의 공예작가 및 브랜드가 참여해 규모면에서 일단 풍성하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3개 동의 방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복합문화공간 ‘신사하우스’에서 33개의 방을 각기 개성 넘치는 공예 전시로 채웠다.
에이(A)동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재기발랄한 작품을 통해 공예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했다. 공예라는 산업에서 자신만의 길을 더듬대며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고민이 감각적인 언어들로 펼쳐졌다. 비(B)동은 김윤환·류종대·이삼웅·황형신 등 무르익은 작가들의 진중한 작품이 신진 작가들과 무게 균형을 이룬다.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윤환 작가의 전시를 만날 수 있어 특히 반가웠다.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나무·철제 등의 소재로 독특하게 표현한 김윤환의 아트 퍼니처를 통해 조각 예술과 공예의 경계가 선사하는 낯선 아름다움을 목도할 수 있었다.
3디(D) 프린팅 기법을 활용해 달항아리·사방탁자·소반 등 한국 전통 공예를 현대적인 소재와 감각으로 해석하는 류종대 작가의 방은 그대로 내 집으로 옮겨 가고 싶은 작품들로 형형색색 채워졌다. 이삼웅 작가의 가구는 한옥의 건축 디테일을 적용한 한국의 미를 담고 있다. 주춧돌과 기둥으로 이뤄진 스툴 4개와 한지가 발린 창호 문살을 적용한 장을 함께 배치해 한옥 건축에서 한 칸을 의미하는 공간을 만든 점이 돋보였다. 시(C)동은 ‘웅갤러리’와 함께 공예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는 8명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이규홍·곽철안·이헌정·서희수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크래프트 서울은 창작자의 매력적인 오브제와 이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공예 플랫폼으로서, 이번 전시에서도 남다른 물건을 만드는 신진 창작자를 발굴하고자 했다. 2023 공예주간 거점 전시로 선정된 이번 행사도 한층 젊고 새로운 공예를 소개하고 개성 넘치는 취향을 공유하는 장이 됐다.
해방촌에서 출발해 남산 소월로를 따라 천천히 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문화역서울284에서는 공예와 자연의 관계성을 조명한 전시가 열렸다.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한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는 2022년 밀라노 한국공예전을 재구성하고 확장한 내용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땅으로부터 탄생한 공예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지난해 밀라노 한국공예관 전시를 현지에서 직접 관람했던 터라 외국 관람객들이 감탄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한국에서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뜻깊었다. 새롭게 확장한 섹션을 더해 8개 주제의 전시를 통해 땅에 기초를 두고 전통과 현대 재료가 어우러진 500여점의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크래프트 서울’의 신사하우스 전시에서 3디(D) 프린팅 기법으로 한국 전통 가구를 재해석한 류종대 작가의 방. 박효성 제공
전시 설명서를 통해 각 작품들의 재료와 의미를 파악하고 관람하면서 그들이 품은 이야기를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빛났던 섹션은 2층에 유리 공예품으로 세워진 벽이다. 숨을 불어넣으며 작업하는 유리 공예가들을 소개하는 섹션답게 ‘단단한 숨을 모아’라고 명명한 이곳에는 10명의 기성 작가와 29명의 대학생이자 신진 유리 공예가의 작품이 빼곡히 사방의 벽을 채우고 있었다. 빛이 투과하는 벽 앞에 놓인 유리는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영롱하게 각자의 자태를 뽐낸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음달 4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로 건너가 서촌과 북촌, 인사동을 유람하며 공예주간 전시를 연이어 관람했다. 서촌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공예품을 인왕산 아래 골목길에 위치한 분재 작업실 ‘서간’과 세라믹 작업실 ‘시선’, 두 공간에서 소개하는 ‘서촌 소요' 전시부터 시작했다. 청와대 앞 효자동으로 이동해 솔루나리빙에서 열리는 ‘일월상회’에서 여름 과일색을 닮은 공예품을 구입한 뒤 경복궁을 지나 2023 공예주간의 거점인 북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한지문화센터, 예올, 제로룸152, 서로재, 아원공방, 서울공예박물관, 북촌전통공예체험관을 비롯해 총 36개의 공예 전시 및 체험 공간이 이어져 풍성한 공예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시선 세라믹’의 도자기 공예 작업 공간을 전시의 일부로 소개한 ‘서촌 소요’. 박효성 제공
‘2023 공예주간’은 끝났지만 또 다른 멋진 공예품을 북촌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케이시디에프(KCDF) 갤러리 윈도우 전시에선 이번 공예주간의 주제인 전국공예자랑에 맞춰 경기 강화, 경남 거창, 전북 남원, 전남 담양, 강원 양구, 제주 지역의 젊은 공예가 8인의 작품을 6월25일까지 소개한다. 북촌에 있는 예올에서도 공예 작가 9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2023 예올 공예 기획전 디스커버(‘Dis_Cover)’가 6월16일까지 계속된다.
글·사진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