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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도 격오지가…다닥다닥 캠핑장 대신 오프로드를 달리다

등록 2023-06-17 07:00수정 2023-06-17 12:00

그걸 왜 해? 오지 여행
올해 6월 오지로 들어가는 길. 자동차가 물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에 11살 큰아들은 놀라워했다. 허진웅 제공
올해 6월 오지로 들어가는 길. 자동차가 물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에 11살 큰아들은 놀라워했다. 허진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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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사전적인 의미로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 현실에선 통화권 이탈지역, 상수도·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지역.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을 탐방하는 것을 ‘오지 여행’이라고 부른다. 현대적 개념으로 보자면, 매끈한 아스팔트가 닦인 온로드(On-Road)의 반대 개념인 오프로드(Off-Road)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다.

전국 어디든 차만 막히지 않으면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 그런 오지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수도권 기준으로 멀지 않은 인천과 경기도 가평 등에도 오지가 있다. 대한민국은 도심에 가까운 곳은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고 그렇지 않은 완전히 잊히는 격오지가 됐기 때문이다. 오지 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도시의 부산함을 떠나고 싶어서다. ‘캠핑을 가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요즘 상업화한 캠핑장은 예약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도착해도 좁은 공간에서 ‘난민캠’(다닥다닥 붙은 텐트 사이에서 고생하는 캠핑)으로 고생하기 일쑤여서 사람을 피해 아무도 없는 더 깊은 곳, 더 외진 곳을 향해 가는 오지 여행가들이 존재한다.

손대지 말고 정해진 대로

모험이 좋아서 또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 등등 오지 여행의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그래서 오지 여행의 규칙부터 먼저 소개하겠다.

①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오지 여행을 떠나기 위한 어떤 준비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남기고 오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는 일이다. 찾아가기 힘든 곳은 쓰레기를 수거하기도 힘든 곳이다. 쉽게 생각하는 과일껍질 한 조각, 플라스틱 비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오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짐을 싸는 것도 마찬가지. 꼭 필요한 것만 최대한 가볍게 싸서 불편하게 다녀온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②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이 덜 탄 곳엔 사람 대신 많은 생명체가 산다. 계곡에는 산천어와 열목어가 살고, 봄에는 두릅과 옻순, 산나물이 자란다. 열매가 맺는 계절에는 버찌, 머루, 산딸기, 으름이 결실을 보인다. 열목어는 귀해서 맛도 귀할 것 같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도 맛없기로 소문난 물고기다. 농약 하나 뿌리지 않은 열매들에도 욕심이 나겠지만 눈으로만 보고 가져오지 않는 것이 좋다. 잠시 그곳에서 쉬었다 도시로 돌아오면 그것보다 맛있는 것들이 지천인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③정해진 길로만 간다

자동차로 오지 여행을 가볼 계획이라면, 본인 차량의 한계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승용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오지가 많다. ‘내 차는 4륜이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금물. 주로 임도를 통해 접근해야 하는 오지들은 등판능력이 충분해도 차의 높이가 너무 낮으면 바닥이 비포장 돌부리에 닿아서 바닥이 심하게 긁히거나 차 자체가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또한 임도들은 비가 많이 올 경우 도로 자체가 침수되거나 산사태로 길이 끊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부하고, 루트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정해진 길로만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 내가 갖고 있는 자동차로 갈 수 있다고 판단되어도, 차를 너무 아끼는 사람이라면 차를 갖고 가는 계획 대신 백패킹을 선택하거나 산악자전거나 산악오토바이 등 다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2020년 가을 필자 지인의 오지 여행 사진. 그 지인은 군 생활 당시 행군했던 길을 10년 만에 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다시 찾았다. 황재빈 제공
2020년 가을 필자 지인의 오지 여행 사진. 그 지인은 군 생활 당시 행군했던 길을 10년 만에 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다시 찾았다. 황재빈 제공

“너 없었으면 포기했을 거야”

이번에 경험한 오지는 6개의 개울을 자동차로 건너는 곳이었다.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떨렸고, 도강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는 ‘혹시 차가 침수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었다. 혼자 가기는 아무래도 겁이 나서 씩씩한 11살 큰아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출발. 내비게이션엔 위치만 잡힐 뿐 그곳으로 향하는 도로는 끊겨 있었다. 물을 건널 때 핸들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 물살에 살짝 밀리는 느낌. 액셀을 밟았지만 바퀴는 헛돌았다.

세번째 개울을 건널 때 아이에게 말했다. “너 없었으면 아빠 중간에 포기했을 거야.” 그런데 그때 아이가 말했다. “아빠. 게임보다 재밌어.” 우리 집은 주말에만 게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일주일을 기다린 게임을 하기 위해서 주말 새벽 6시에 일어난다. 그 귀한 시간을 아빠를 위해 희생한 아이가 게임보다 재밌다고 말하는 순간, ‘이러려고 내가 여길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부딪히는 나뭇가지들의 소리를 들으며 도장면의 흠집을 걱정했지만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좁은 길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2㎞를 전진해 6개의 개울을 넘자 거짓말처럼 평온한 목적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은 폐교된 학교의 작은 운동장. 그 옆으로 흐르는 그보다 작은 개울. 이곳에서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여름내 이 개울에서 멱을 감고, 머루며 버찌를 따 먹으며 자랐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난 건 큰애보다 겁이 많은 8살 둘째를 ‘왜 안 데려왔을까’하는 아쉬움. 가는 길에 큰 동물의 배설물을 봤는데, 둘이서 한참 “이건 누구의 똥일까? 아빠 생각엔 호랑이 똥인 것 같은데?” “아냐. 우리나라에 호랑이 없어. 그럼 표범일까?” 같은 대화를 나눴다. 산책하며 주변에 멧돼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둘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영상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 휴대전화의 안테나가 단 하나만 떠 있는 통화권 이탈 일보 직전의 오지.

혹시 ‘내가 쓴 글로 오지에 사람이 몰려들어 또 다른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걱정만 하며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이 마음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오지로 떠나고 싶다면 <대한민국 오지 여행>이라는 책을 참고하면 된다. 잘 준비하시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좋은 여행을 떠나 보시길.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저처럼 자동차에 남은 미세한 흠집을 없애는 고행의 길도 떠나 보시길.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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