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할 때였을 거다. 친구 아버지 중에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난 그 집에 놀러갔을 때 처음으로 냉장고가 아니라 유리장에 들어있는 술병을 보았다. 그 때 우리는 위스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고 ‘퉁쳐서’ 양주라고 불렀는데,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어서는 술을 보면서 ‘이거 먹으면 죽는 거 아닐까’라며 경탄하던 게 기억난다.
그 때 함께 놀던 다섯명의 애송이들은 부모님이 여행을 가신 어느 밤 그 ‘술장’을 공략했다. 독하고 목구멍이 타 들어갈 것 같은 느낌. 이걸 어떻게 마시냐고 깔깔거리기도 했을 거다. 그러나 정확한 기억은 없다. 우리가 마신 게 진짜 양주였는지도 사실은 알 방법이 없다. 그 때 마셨던 게 ‘패스포트’나 ‘썸싱 스페셜’ 같은 거였다면 그래도 양주 맛은 보고 기억을 잃은 걸 테고, ‘캡틴큐’나 ‘나폴레온’ 같은 양주의 탈을 쓴 정체불명의 무언가였다면 우리는 진짜 양주의 맛이 어떤지는 알지 못한 채 그냥 기억을 잃었을 테니까. 아무튼 안 마셔본 친구들에게 “나 양주 마셔봤어”라며 뻐길 만한 경험이긴 했지만, 그저 독하고 목이 탈 것 같은 느낌이 전부였다. 그 강렬한 기억 외에 그 액체가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양주 맛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접대 문화와 연결돼있던 그즈음의 양주가 싫었다. 신입사원 시절 연말이 되자 처음으로 선배를 따라 송년회를 겸한 접대 술자리에 불려갔던 날이 기억난다. “아이고, 내년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새파란 애송이에게 술을 권하는 머리 희끗한 업체 사장님을 보면서 받는 사람도 불편한 술인데, 따라주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밥벌이를 한다는 건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셨던 것 같다. 따라주는 대로 넙죽 넙죽 받아먹기는 했지만 뒷맛이 쓰고 불편한 술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포장마차에 앉아 선배와 둘이서 골뱅이탕에 소주를 마셨는데, 까끌까끌한 목구멍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런 자리를 굳이 만드는 시대도 아니고 나도 그런 자리를 피해 다닐 요령쯤은 배웠지만 아무튼 양주는 나의 술이 아니었다. 독하고 쓴 삶의 맛은 하나도 부드럽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를 넘기며 접대는 물론 회식 문화도 사라졌다. 바야흐로 혼술·홈술의 시대. 처음엔 집에서 혼자 소주병을 따는 게 양심의 역치를 넘어서는 행동이라는 느낌이었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었고 주변의 술 먹는 친구들도 맥주에 치킨 따위를 먹으며 알코올에 대한 갈증을 풀고 있었다. 그러자 그 부작용으로 무섭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맥주 캔을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점점 간이 커지며 양심의 역치가 낮아진 나는 살이 찐다는 논리로 맥주 대신 소주를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주를 마셔도 안주의 종류가 바뀔 뿐이었지, 무섭게 먹는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그때 나의 술친구 중 누군가가 “집에서 술 마실 때 소주·맥주 대신 위스키를 마신다”고 했다. 안주를 세게 먹지 않아도 되니까 그나마 살이 덜 찐다는 논리. 그것이 나의 위스키 탐구 생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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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디드 몰트 스카치 위스키인 ‘몽키 숄더’. 허진웅 제공
내 돈으로 위스키를 사려고 하자 사실 좀 고민이 됐다. 이 돈을 내고 술을 사는 게 맞나? 막걸리도, 소주도, 맥주도 1만원짜리 하나 들고 편의점에 들르면 충분했는데, 이 위스키란 놈은 못해도 3만~4만원이 넘었다. 아마도 제일 싼 무언가를 사서 혼술을 하고 예전 캡틴큐를 마셨던 때처럼 다음날 숙취에 고생하며 동료에게 “난 잘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조니워커 블랙을 마셔보라”고 했다. 윈스턴 처칠이 가장 좋아했다는 위스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호주머니는 비었는데, 뭘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 싶으면 고르라고 했던, 아마 위스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바이블 같은 블렌디드 스카치. 그 친구는 “이것까지 마셔 보고 위스키가 너한테 맞는지 보라”고 했는데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위스키의 맛을.
달콤한 벌꿀 냄새가 있고, 약간 탄 듯한 나무 향기도 있고, 과일 맛도 살짝 나면서 마지막엔 ‘피트’라고 부르는 깊은 흙냄새를 머금은 술. 달고 쓴 알코올 향 하나로 모든 게 설명가능한 소주가 어떤 음식도 안주로 만드는 포용력이 높은 술이라면, 위스키는 안주보다는 술의 맛을 즐기라고 말하는 술 같았다. ‘음, 이거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하며 나는 위스키의 달콤한 매력에 매료됐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마시는 조니워커, 발렌타인, 로얄 살루트, 시바스리갈 같은 술들은 블렌디드 위스키다. 블렌디드 위스키란 싹튼 보리를 발효시킨 몰트 위스키에 밀이나 옥수수 등 보리 외의 다른 곡물을 발효시킨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서 만든다. 싱글몰트가 더 고급으로 인정받는 요즘에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블렌디드 위스키가 아니었다면 위스키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마스터 블렌더라고 불리며 존경받는 위스키 장인들이 수천·수만가지 샘플을 맛보고 조합해 시장에 내놓는다. 그들은 자신의 후각과 미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음식 섭취와 생활환경을 절제하고 독특한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이들이 사랑할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 어떤 위스키와도 다른 특별한 맛을 낼 것. 이런 모순적인 목표를 달성해낸 장인들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비교하며 나의 취향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위스키 생활은 꽤 고상하고도 질리지 않는 취미가 될 수 있다.
이 글의 목표는 딱 여기까지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 외에도 술에는 다른 재미가 있다는 걸 말하는 것. 막걸리도 빚고 위스키도 즐기고 있지만, 고된 하루의 끝에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나누는 술만큼 맛있는 음료는 없다. 올해 가기 전에 한잔 하자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빗발치는 송년의 시기. 잘못 마신 술은 몸에도 좋지 않고 관계도 해친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 대신, 술의 맛 자체를 음미하는 자리도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번 연말에 나는 ‘처음 마신 양주’에 정신줄을 함께 놓았던 한 친구와 약속했다. 끼리끼리라 그런 건지 요즘 그 친구도 위스키 재미에 빠져 있단다. 좋은 술을 하나 준비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가볍게, 하지만 깊게 둘만의 시간을 즐겨볼 생각이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