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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고소하고…강낭콩의 ‘여름 전성기’ [ESC]

등록 2023-07-22 10:00수정 2023-07-22 12:44

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강낭콩

장마 전후 수확량 늘고 제맛
밥·샐러드에 넣으면 ‘포만감’
색다른 콩국에 콩국수 변주
강낭콩. 게티이미지뱅크
강낭콩. 게티이미지뱅크

“할머니, 이거 강낭콩이에요? 색깔이 너무 예쁜데요?”

광장시장 맞은편에 은행이 하나 있다. 그 은행 계단 아래에 오랫동안 군밤과 은행을 구워 파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이렇게 더운 철이 되면 콩을 까서 옆에 놓고 같이 파신다. 할머니와 나는 10여년 된 사이다. 손짓을 하며 옆에 앉아보라 하신다.

“이게 딱 지금 제일 맛있어. 불리지 말고 밥에 넣어서 그냥 밥을 해. 지금 콩은 안 불려도 맛있어!”

여름콩은 완두에서부터 시작된다. 초록색 완두가 많이 보일 때즈음 강낭콩, 누에콩, 울타리콩, 호랑이콩도 줄지어 시장에 나타난다. 이후 가을까지 서리태, 쥐눈이콩, 백태 등이 계속 나오고 더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콩 종류들이 또 줄을 잇는다. 왠지 콩 수확이라고 하면 가을이 절정을 이룰 것 같지만 사실 여름에, 특히 장마 전후로 많은 종류의 콩을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할머니 말씀처럼 지금이 강낭콩의 전성시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한 자줏빛의 강낭콩(서양에서는 콩팥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kidney bean’이라고 부른다), 전체가 하얀 흰 강낭콩, 색이 얼룩덜룩한 호랑이 콩, 크기가 좀 더 크고 통통한 울타리콩, 연한 커피색을 띤 갈색콩 등 모두가 모양과 색·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른 ‘강낭콩’이다. 중국의 강남(장난)에서 온 콩이라 ‘강남콩’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올바른 표기는 강낭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껍질콩, 줄기콩으로 불리는 ‘스트링빈’도 껍질째 먹는 강낭콩의 일종이다. 스트링빈 역시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다.

콩은 무조건 삶아 먹는다. 안 익혀 먹으면 맛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배탈이 난다. 익혔을 때 생기는 단맛과 고소한 맛도 물론 매력이다. 여름 콩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밥에 넣어 따뜻하게 먹는 것이다. 불릴 필요가 없어 무척 간단하다. 잘 씻은 강낭콩을 밥할 때 슬쩍 섞어 소금 한꼬집을 넣고 밥을 지으면 밥솥 전체가 달고 고소해진다.

흰 강낭콩이나 호랑이콩은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15분 삶은 뒤 찬물에 헹궈서 샐러드에 토핑해서 먹는다. 마늘, 양파, 식초, 설탕, 간장, 올리브오일을 동량으로 넣고 드레싱을 만들어 비벼 먹으면 포만감까지 만족스러운 콩 샐러드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식 후무스도 강낭콩으로 만들 수 있다. 강낭콩을 15분 삶아 건져 물기를 빼고 마늘, 올리브오일, 약간의 소금을 넣고 되직하게 갈아 만들면 끝이다. 빵을 곁들여 상에 내면 근사한 요리가 된다.

껍질콩은 살짝 끓는 물에 1분 정도만 삶아 건져낸 뒤 마늘과 까나리액젓 몇 방울을 넣고 기름에 볶는다. 간단히 볶기만 해도 아삭한 맛에 감칠맛이 배어들어 반찬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뭐니뭐니해도 여름엔 콩국수인데 강낭콩으로도 콩국수가 가능하다. 15분 삶아 건진 콩에 콩 삶은 물과 두유를 살짝 더해 믹서에 곱게 갈아준다. 서리태나 백태처럼 진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대신 단맛이 강한 콩국물이 완성된다. 다양한 강낭콩의 색깔 때문에 그때그때 달라지는 콩물의 색깔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소금간 혹은 설탕 간을 조금 해서 먹는 콩국물은 또 다른 느낌의 신세계다. 껍질이 거슬리면 더 곱게 갈거나 체에 한 번 걸러서 마시기 좋게 만든다. 국수를 말아도 좋지만 강낭콩 콩국물엔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이 잘 어울린다. 달큰한 콩국물에 흐느적한 묵. 거기에 열무김치의 적당히 익은 새콤함을 더해주면 입안은 곧 축제다. 콩국물은 자연스레 소스처럼 입에 퍼지고 아삭한 식감의 열무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흔하디흔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여름의 맛, 그러나 알고 챙겨 먹으면 횡재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여름 콩의 맛이다.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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