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전기차를 사려고 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다. 국내 전기차 전시회인 ‘이브이(EV) 트렌드 코리아 2023’ 사무국이 올해 초 국내 성인남녀 217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내용을 보면,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26%)가 우려스럽다는 응답이 첫째였고, ‘차량 가격’(24%)과 ‘충전소 설치’(19%) 걱정이 그 뒤를 잇는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긴 충전 시간과 짧은 주행거리 등 전기차의 단점을 정확히 겨냥하는 결과다.
딜로이트 컨설팅이 지난해 9~10월 전 세계 24개국 2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독일의 경우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400㎞를 넘어야 한다는 응답이 79%에 달했고, 500㎞ 이상을 바라는 사람들도 53%로 절반이 넘었다. 우리나라도 ‘400㎞ 이상’이 73%, ‘500㎞ 이상’도 50%였다.
통화 수단이긴 하지만 유선전화와 스마트폰이 다르듯, 배터리와 전기모터로 달리는 전기차는 엔진을 얹은 내연차와 같을 수 없다. 사람들이 바라는 ‘전기차 1회 충전 400㎞ 주행’이 합리적인 기대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자동차는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서울시 자동차 1일 평균주행 거리’ 통계를 보면, 2022년 서울 시내 비사업용 승용차의 1일 평균 주행거리는 27.9㎞였다. 주중 출·퇴근용 평균주행 거리가 140㎞ 정도이고, 주말 나들이 가는 거리 100㎞ 정도를 합쳐도 일주일에 300㎞를 넘지 않는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기준 300㎞ 전후라고 해도 어떻게 타느냐에 따라 1주일에 한번 충전하면 된다는 말이다.
코나 일렉트릭 스탠더드 모델. 현대자동차 제공
주행가능 거리가 늘어날수록 배터리와 차량의 무게도 묵직해지고 이는 차량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의 경우 48.6㎾h(킬로와트시) 배터리를 장착한 스탠더드 모델과 64.8㎾h 배터리의 롱레인지 모델의 공차중량(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자동차의 기본무게)은 각각 1630㎏과 1725㎏이다. 스탠더드 모델의 1회 충전 뒤 주행가능거리는 311㎞, 롱레인지는 417㎞다. 1회 충전으로 롱레인지 모델이 스탠더드 모델보다 106㎞를 더 주행할 수 있지만 가격은 300만원 더 비싸다.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 중에는 1회 충전 주행거리 400㎞ 미만이 많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무공해차 통합누리집’(ev.or.kr)을 보면,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중에서 미니 쿠퍼 에스이(SE)가 175㎞로 가장 짧다. 푸조 이(e)-2008 에스유브이(SUV) 지티(GT) 237㎞, 벤츠 이큐에이(EQA)250 300.8㎞, 볼보 엑스시(XC)40 리차지 337㎞, 아우디 큐(Q)4 스포트백 이트론40 357㎞, 기아 이브이(EV)6 스탠다드 2더블유디(WD) 377㎞ 등이다.
이런 차량들은 1회 충전 주행거리 400㎞ 이상을 달리는 차들과 견줘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 또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2더블유디 19인치를 기준으로 롱레인지(450㎞)와 스탠더드(337㎞) 모델의 주행가능 거리는 113㎞ 차이인데, 차량 가격은 롱레인지 모델이 400만원 이상 비싸다. 가격이 저렴할수록 등록할 때 세금이나 공채 매입 금액이 적은 것은 물론 보험료도 싸진다. 구매 과정 전체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한 10% 이상 아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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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두 번 장거리 주행을 해야 한다면 짧은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가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기차는 알려진 경제운전 방법만 지키면 실제 인증 주행거리보다 더 많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초 인증 주행거리 260㎞인 푸조 이(e)-2008을 타고 지방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완충 상태에서 서울을 출발해 목적지인 강원도 원주까지 거리는 약 120㎞였고 2박3일 동안 출장지와 숙소를 왕복한 거리가 80㎞였다. 강원도·경기도 국도를 돌아 들른 서여주휴게소까지 누적 주행거리는 388㎞였는데 배터리 잔량이 19%였다. 인증 주행거리보다 128㎞를 초과해서 이동했음에도 배터리가 20% 가까이 남은 것이다. 이쯤 되면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볼 만하다.
코나 일렉트릭 롱레인지 모델. 현대자동차 제공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다. 어떤 차를 타더라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곧장 가는 사람은 없다. 휴게소에 들러 30분 정도 쉬어간다고 가정하면, 100㎾급 급속충전기에서 적어도 40㎾h는 충전이 가능하다. 이는 2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 용량이다.
중요한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자신의 전기차 사용 패턴과 차량가격이 핵심 고려 요소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있을 장거리 주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싼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 400㎞ 이상의 전기차를 구입하는 것은, 명절 때 만나는 가족을 태우겠다는 생각에 9인승 승합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400㎞라는 마음의 벽을 허물면 좀 더 경제적으로 고를 수 있는 전기차가 훨씬 많아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1회 충전 뒤 주행가능 거리는 늘고 있다. 단위 무게당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 밀도는 양극재의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데, 2010년 기준 리튬망간산화물(LMO)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100Wh/㎏(킬로그램당 100와트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주로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NCM) 계열의 배터리는 250Wh/㎏을 넘었다. 10년 새 거의 세 배 가까이 용량이 커진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400㎞ 고민’이 점점 줄어들겠지만 하루아침에 실현되기는 어렵다. 당장 ‘400㎞ 이하의 전기차’가 대안으로 고려되는 또 다른 이유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