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장비와 공구가 자리를 잡으며 비로소 공방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나무공방 쉐돈의 내부.
처음 취업해서 자취를 시작할 때다. 서울 홍대 앞 작은 원룸을 얻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바닥에 주저앉아 느낀 사회 초년생의 흥분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떻게 이 공간을 채워나갈 것인가. 비슷한 감정을,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제주 서귀포 효돈의 공방에서 다시 마주했다. 모든 공사가 끝나고 이제는 장비를 들여올 시간. 기나긴 공사 끝에 평평하고 견고한 바닥과 단열 기능을 갖춘 높은 층고의 천장을 갖게 됐다. 곰팡이가 피어오른 벽지 대신 아이보리색으로 페인트칠 된 깨끗한 벽면이 산뜻했다.
장비 목록을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소한의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대한의 작업이 가능한 장비를 갖춰야 했으므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랫말처럼, 끝없이 썼다 지웠다. 아, 갖고 싶다. 너희 모두를. 언젠가 쓴 것처럼 목공 장비의 세계는 끝이 없다. 전문가용 작은 전동 임팩트 드라이버(딱딱한 소재에 구멍을 내거나 나사를 조이는 장비) 하나의 가격이 50만~60만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자동차의 세계에서 ‘독일 3사’가, 명품 시계에는 롤렉스와 오메가가 있다면 목공 장비에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브랜드로 디월트·밀워키·마끼다가 꼽힌다. 여기에 누군가는 보쉬나 힐티를 넣기도 한다. 디월트와 밀워키는 미국, 마끼다는 일본 브랜드다. 당연히 ‘윗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은 있다. 자동차의 롤스로이스나 람보르기니·페라리처럼, 시계의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처럼 목공에선 독일의 ‘페스툴’이다. 그냥 외우자. 끝판왕은 페스툴이다.
집 짓는 대목이든, 인테리어 업계든, 나 같은 소목 공방이든 한 가지 브랜드로 통일하는 걸 선호한다. 디월트는 노란색, 밀워키는 빨간색, 페스툴은 밝은 녹색이다. 공방이나 공사 현장을 보면 업체 대표의 선호도에 따라 장비들이 노랗거나, 빨갛거나 하여튼 같은 색깔인 경우가 많다. 단순한 ‘깔맞춤’의 의미도 없지 않지만, 핵심은 배터리의 호환성이다. 브랜드가 달라지면 전동 공구의 배터리 충전 시스템도 함께 달라지기 때문에 최대한 한 가지 브랜드의 장비로 통일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
공교롭게도 목공 스승이 페스툴 마니아다. 스승의 ‘녹색 공방’에서 자연스럽게 페스툴로 목공을 배웠다. 그때는 모든 장비가 이런 줄로만 알았지. 이 정도의 섬세함과 정확성, 안정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페스툴의 샌딩기(목재의 표면을 부드럽게 갈아내는 장비)와 이동식 집진기(톱밥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장비)의 성능은 정말 다른 브랜드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목공방인데 먼지가 안 난다. 마스크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다지 필요가 없다. 원형 톱류와 가이드 레일 시스템의 완성도 역시 그냥 ‘미쳤다’. 페스툴의 제품 개발실에서 “외계인을 고문해 만들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그만큼 가격은 ‘사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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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공구들은 벽에 정리해 걸었고, 붉은색 이동식 공구 트레이도 장만했다.
아아, 공방의 ‘녹색 물결’을 꿈꿨으나 현실은 냉혹하였으니 나는 그만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포르셰 911’로 처음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딴 초보운전자가 ‘평범한 자동차’에 만족할 수 있을까? 어느 브랜드든 기천만원대에 육박하는 16인치 수압대패(울퉁불퉁한 목재의 두 면을 정확한 직각으로 깎아낼 수 있는 장비)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월트의 자동대패를 구했다. 원목을 주로 다루는 목공방에서 수압대패는 필수지만, 자동대패만 있다고 작업이 안되는 건 아니다. 가령 노트북 대신 스마트폰으로만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기자가 있다고 치자.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그런 것이다.
각도절단기(정확한 각도로 절단하기 위한 지표 장치와 둥근 톱으로 구성된 장치), 임팩트 드라이버와 드릴 세트도 디월트다. 루터(날물이 빠르게 회전하며 나무를 깎아내는 전동 수공구)와 트리머(루터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지만 크기가 더 작은 장비)는 마끼다 제품을 중고로 구매했다. 페스툴의 샌딩기와 이동식 집진기, 그리고 원형톱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장비인 테이블톱(목재를 결대로 길게 켜는데 사용하는 목공 기계)과 메인 집진기는 대만의 ‘샤프맥스’의 3마력 제품으로 들여놓았다. 테이블톱과 메인 집진기는 앞서 설명한 전동 공구류와는 결이 조금 다른, 공장의 ‘기계’에 가까운 장비들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깔맞춤’은 고사하고 여러 브랜드의 색깔이 혼재된 ‘무지갯빛 공방’이 되었다. 그나마 원하는 수준의 작업은 일단 가능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랄까. ‘앞으로 천천히 갖춰나가자’라고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비는 들였으나 작업대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필요한 집기와 작업대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생각만큼 즐거웠다. 사실 창업 2년 차인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다. 40대 중반의 남성이 ‘자신만의 공간’을, 자기의 두 손으로 꾸며나갈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기나긴 셀프 인테리어 과정의 노고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바닥에서 뚝딱뚝딱, 하나씩 다듬고 채워나가는 과정은 그저 행복했다.
막 장비와 기계를 들이고 내부 정비를 계속하던 때다. 열린 창틈으로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여기서 짹짹, 저기서 짹짹이었다. 비상이다.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새똥이 금속제 장비나 테이블톱의 정반에 묻으면?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쳤다. 우선 장비에 커다란 비닐을 덮었다. 장대에 그물을 묶어 휘둘러도 봤고, 창문을 활짝 열어 쫒아보려고도 했다.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마지막 수단으로 타카총(못이나 핀을 목재에 박는 데 사용하는 장비)으로 실핀도 쏴봤다. “업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당혹감에 벌인 일이지만 어쨌든 소용없었다. 새 장비를 들여온 초보 공방장의 조바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는 계속 짹짹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두어 시간 만에 난리통은 종료됐다. 들어온 창문으로 무심하게 날아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오후 내내 장대를 휘두르며 공방을 빙글빙글 돌던 나는 그만 기진맥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새 한 마리가 전해준 낭보였을까. 거짓말처럼 ‘첫 주문’이 들어왔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