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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즐거움

등록 2007-06-13 16:04수정 2007-06-13 19:51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오늘은 참 즐거웠습니다아~.”

우연히 일곱 살짜리 딸아이의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온통 “즐겁다”투성이입니다. “즐겁게 먹었다… 즐겁게 놀았다… 즐겁게 공부했다.” 묘사력이 이토록 부족하다니, 쯧쯧 혀를 찹니다. 즐겁기만 하면 싱겁습니다. ‘고민’이 담겨 있어야 일기 훔쳐보는 맛이 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가 봅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결핍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소설가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고 합니다. 하루하루의 역사가 무난하고 평탄하기만 하면 영감이 부족해지겠지요. 뭔가 흥미진진한 우여곡절이나 극적인 생활의 반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글 쓸 재료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아, 그렇다고 유괴를 당하거나 하는 건 곤란하겠지요.

여행기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구경 한번 잘했다”는 이야기는 심심합니다. 좋은 데서 싸게 먹고 잤다, 신기한 볼거리가 가득했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여행이었다구요?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역시 예측불허의 사건을 체험해야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한겨레 매거진 가 공모한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체험기의 당선작들도 비슷합니다. 반듯하고 소극적인 ‘관광’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생고생 체험들이 고급 선물의 행운을 얻었습니다.

다시 새로운 휴가를 계획할 시즌입니다. 여름을 택한다면, 장소와 날짜를 빨리 정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휴가 때 럭비공처럼 튀면서 죽을 고생 하고 싶으십니까? 내년에 재미있는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나간 해프닝이야 늘 애틋한 추억이지만, 눈앞에 닥칠 드라마는 두렵습니다. 남이 비웃어도 좋으니 올 휴가는 이런 소감으로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참 즐겁기만 했습니다아~.”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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