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우울함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티브이나 컴퓨터를 켠다. 2. <화니 페이스> 비디오테이프를 틀거나 비디오 파일을 실행시킨다. 3. 넋 놓고 보다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27년 내 인생에서 제법 끈질기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방법이다. 오드리 헵번과 프레드 애스테어가 주연을 맡고 스탠리 도넌이 감독해 1957년 만들어진 이 뮤지컬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3살 무렵. 패션잡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이상야릇한 감각과 감동의 세계로 어린 나를 초대했다.(정녕 꼬맹이 때부터 칙릿 영화를 좋아했단 말인가.) 어쨌든 이 영화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이다. 프레드 애스테어가 부르는 거슈윈의 ‘퍼니 페이스’를 들어보자. “I love your funny face. Your sunny, funny face.” 깜찍발랄한 오드리 헵번의 ‘하우 투 비 러블리’나 ‘봉주르, 파리’까지 들으면 내 머릿속은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0바이트’의 상태로 변한다. 늦은 밤 마감 중에 우울함이 내 어깨 근처를 맴돌 때면 이 영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주문을 외듯 이 노래를 부른다. 당신의 재밌는 얼굴을 사랑한다고.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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