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양옆으로 쌓인 테트라포드에서 부자가 낚시를 즐긴다.
[매거진 Esc]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⑤ 이상엽의 삼척 장호항
조금은 이른 새벽 5시 반. 지난밤에 여장을 풀었던 민박집을 나와 길을 걸었다. 텅 빈 해변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강원도 삼척시 장호리 마을. 1리는 항구이고, 2리는 해수욕장이다. 먼바다에서는 찬물과 더운 여름 공기를 섞어 안개를 만들고 꾸준히 육지로 실어 나른다. 미스트(mist·안개)는 미스터리하다. 뭔가 저 멀리에서 나타날 듯한 긴장감이 돈다. 장호리의 명물이라는 등대가 안개에 갇혀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짙은 안개에 포기하고 장호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곳곳에 장호항을 홍보하는 문구 ‘한국의 나폴리’가 눈에 띈다. 나폴리라? 나도 가 본 일 없고, 이곳 주민 중 얼마나 나폴리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이곳이 나폴리라고.
나폴리와 알랭들롱, 그리고 문어
그래서 나는 이곳 항구에서 알랭들롱을 찾기로 했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그 냉혈 청년 말이다. 하지만 요트를 탄 미남 청년은 고사하고 내 파인더 안에는 아줌마 아저씨들뿐이다. 공판장은 안개에 쌓여 있다. 바닷바람이 세게 불어올라 치면 안개가 걷혔다가도 금세 시야가 흐려진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은 밤샘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잡은 고기를 털어내고 있다. 곧 경매가 시작될 모양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뭔 고기들이 잡혔나?
선창 가득한 고기를 기대했지만, 왠지 썰렁하다. 오징어 두 대야, 작은 가자미 한 대야가 전부다. 다른 배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주로 오징어와 쥐노래미와 같은 잡고기들. 그리고 멍게 몇 상자. 판장 아줌마는 “찬바람 불어야 잡혀. 여름에는 이 모냥이지” 한다. 오늘 경매의 주역은 단연 문어였다. 얼핏 보기에도 7㎏을 넘기는 묵직한 놈이다. 망에서 꺼내 바닥에 내놓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경매사가 나무쪽 두 장으로 만든 패를 돌리고 입찰을 유도한다. 내 카메라는 입찰 붙은 사람들이 아니라 문어에게로 쏠린다. 문어는 사람들 다리 틈 사이로 슬슬 탈출을 시도한다. 1m쯤 도망가다가 다시 잡혀오고, 또 도망가다가 잡혀오고. 문어는 7만원에 낙찰되었다. 낙찰 받은 횟집 아주머니가 의기양양하게 ‘턱’하고 문어 대가리를 낚아채더니 종종 사라진다. 아마도 이놈은 푹 삶겨 15만원 이상에 팔려나가리라. 탈출은 실패했다. 아, 문어야! 잡혀가는 너의 뒷모습에서 왜 알랭들롱이 떠오르냐?
공판장의 떠들썩함은 6시 반이 되자 구경나온 여행객들과 낙찰 받은 상인들의 몫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값을 흥정하고, 회를 뜨고, 초장을 들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탓에 이 신선한 회 한 점 같이할 이 없음을 한탄하며 공판장을 나와 방파제를 걸었다. 방파제 양옆으로 거대한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가 비현실적인 무게감으로 쌓여 있다. 그리고 멀리 하얀 등대가 서 있다. 뿌연 안개 속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들도 보인다. 바다에서 실려온 안개는 짭짤하고 비린 생선내가 난다. 뒤돌아서 장호항을 보니 바닷가의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짙붉은 바위 옆에/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꽃을 꺾어 받자 오리다’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으로 가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절벽 위의 철쭉꽃을 따 달라 철없이 요구하매 수염 허연 노인이 직접 꽃을 따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다. 어릴 적 시험 준비를 위해 달달 외던 그 노래이다. 그 무대가 바로 이곳이란다. ‘수로부인 공원’은 근처 증산해수욕장에 조성(구지가를 바탕으로)됐다는데, 이곳이 좀더 그럴듯하다. 절세미녀라지만 유부녀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덥석 들어준 장호리 올드보이는 과연 누구일까? 불어오는 안개는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다시 장호리 절벽을 감추어버렸다.
삼척=사진·글 이상엽/다큐멘터리 사진가
어부들의 고기를 말리는 광주리는 언뜻 놀이기구같아 보인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문어는 상인들에게 언제나 인기다.
빨간 대야에 담긴 멍게들.
해변에 있는 차광막이 따가운 볕을 가려준다.
방파제 양옆에 쌓인 테트라포드.
공판장의 떠들썩함은 6시 반이 되자 구경나온 여행객들과 낙찰 받은 상인들의 몫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값을 흥정하고, 회를 뜨고, 초장을 들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탓에 이 신선한 회 한 점 같이할 이 없음을 한탄하며 공판장을 나와 방파제를 걸었다. 방파제 양옆으로 거대한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가 비현실적인 무게감으로 쌓여 있다. 그리고 멀리 하얀 등대가 서 있다. 뿌연 안개 속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들도 보인다. 바다에서 실려온 안개는 짭짤하고 비린 생선내가 난다. 뒤돌아서 장호항을 보니 바닷가의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장호리해수욕장의 바다와 하늘은 더없이 깨끗하다.
장호리해수욕장에 살짝살짝 비치는 햇볕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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