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기순 감독의 불곰 조각상
[매거진 Esc] 여행에서 건진 보물 최기순 감독의 불곰 조각상
최기순(45)씨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상급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시베리아의 야생 호랑이도, 연해주의 아무르 표범도 모두 그의 카메라에 잡혔다. 최 감독의 작업 공간은 시베리아, 연해주, 캄차카 등 한반도와 연결된 극동 지방. 멸종된 한국의 야생동물이 살아있는 곳이다.
캄차카에 처음 간 건 1997년이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다녀왔다. 얼마간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곰을 찍기 위해서였다. 화산과 만년설이 공존하는 캄차카는 최 감독의 말마따나 “불곰의 땅”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극히 일부분, 나머지는 최고 포식자 불곰이 지배한다.
한국방송 환경스페셜 ‘불곰의 땅, 캄차카’ 촬영에 한창이던 때 그로노츠키 자연보호구역에서였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외딴 오두막에서 자연보호구역 관리인만이 자연을 지키는 곳. 최 감독은 오두막에서 불곰을 기다렸다.
하지만 불곰이 매일 찾아오는 건 아닐 터. 최 감독은 할일이 없었고, 관리인은 나무를 깎아 곰을 조각했다. 최 감독이 물었다. “왜 곰을 깎지요?” “여기서 곰을 나만큼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곰을 보는 대로 기억해 깎는 거지요. 보세요. 내가 깎은 곰들은 모두 얼굴과 표정이 다르잖아요.”
최 감독도 깎기 시작했다. 반달곰 미샤와 마샤를 생각했다. 미샤와 마샤는 그가 시베리아에서 거둔 어미 잃은 ‘고아 곰’들이다. 2년 동안 우유를 먹이며 키워 타이거 숲으로 돌려보냈다.
“곰은 생후 석 달부터 시작해 죽을 때까지 놀아요. 우리가 호랑이나 사자가 논다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곰은 놀 줄 아는 동물입니다.”
최 감독의 해석으로, 그래서 장난기 어린 곰을 주제로 한 인형이나 조각이 많다는 것. 정말로 최 감독의 작품을 보면 노는 곰이 나온다. ‘불곰의 땅, 캄차카’에서 어린 곰 두 마리가 눈썰매를 타며 논다.
최 감독은 지금 강원도 홍천에서 자연생태박물관 준비에 한창이다. 그동안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모아 한반도에서 사라진 야생동물을 박물관에서 틀어주고 싶다. 내년 문을 여는 게 목표.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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