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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의 쾌감 소용돌이

등록 2007-12-05 18:03수정 2007-12-05 18:07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1994년(사진은 1996년 빈티지)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1994년(사진은 1996년 빈티지)
[매거진 Esc] 이주의 와인/
케이브레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정상씨의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1994년
묵직해진 가을 햇살을 안고 와인 집에 들어섰다. ‘보급형’ 와인하고만 놀아나던 난 무엇에든 그랬듯 쉬 싫증을 느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스폰서’와 함께였다. 사장 친구를 거느리고 그 집에 갔다. 친구가 사장이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보급형 와인을 홀짝이던 내가 갑자기 싫증을 낸 것도 든든한 사장 친구를 믿고 오만을 떤 것이었다.

주인장을 불러 좀더 ‘도도한 처자’를 부탁했다. 주인장은 잠시 기다리라 했다. 잠시 뒤 ‘그녀’가 내 앞에 섰다. “리오하의 처녀”라며 주인장은 찡긋 윙크를 했다. 가녀린 병목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무미건조. 냉랭하고 무뚝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키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입술이 닿았는데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태. ‘그녀’와의 첫 키스가 그랬다. 그러나 본전은 뽑아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성심껏 와인을 입에 머금고 굴렸다. 그러기를 30여분.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록 음악에서 베이스가 들리는 순간. 모노 사운드만 듣다가 스테레오를 듣는 순간. 흑백티브이만 보다 에이치디 컬러 화면을 보는 순간. 그 냉랭하고, 새침하고, 무뚝뚝하던 ‘그녀’가 한순간에 잡아먹겠다는 듯이 나를 덮쳤다. 예측불허의 쾌감 소용돌이. 화학적 일체감. 그렇게 ‘그녀’는 날 갖고 논 뒤 미소를 흘리고 사라졌다. 천하의 귀차니스트인 내가 ‘그녀’의 이름을 메모까지 해 뒀다.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1994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1994년(사진은 1996년 빈티지)/13.5%/소매가 12만원/문의 레뱅드매일 (02)2127-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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