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거리 상점에 나붙은 광고 포스터. 일본어는 자음뒤에 매번 모음이 들어가 영어에서 수입된 단어들이 꽤 길어진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매거진 Esc] 리처드 파월의 아시안 잉글리시 5
일본과 한국에 침입한 영어는 아시아에서 어떻게 변주됐는가
일본과 한국에 침입한 영어는 아시아에서 어떻게 변주됐는가
일본에서 ‘바추아루’(virtual)라는 말을 듣고 헛갈리지 않았는가? ‘바리아 푸리’(barrier-free)라는 말은 어땠는가? 잘 모르면 03-3900-3111로 전화해 보라. 국립일본어기구가 외래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핫라인을 운영한다.
1885년 일본 소설에도 영어 등장
국립일본어기구 누리집(www.kokken.go.jp/public/gairaigo/Teian2/index.html)에 들어가도 ‘일본어의 변종들’(중국어를 음차해 쓴 것이 대부분이다)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세이프티 넷’(safety net)을 ‘안젠모우’로 쓰는 것처럼 직역한 것도 있고, 기능적으로 재조합한 단어도 있다. 그래서 덤핑(dumping)은 ‘불공정한 바겐세일’이라는 뜻이 됐다.
외국어가 일본을 침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아주 오래 됐다. 그리고 ‘침입한’ 외국어의 90%가 영어다. 1885년 쓰보우치 쇼우유는 소설에는 한 교양 있는 주인공이 나와 이렇게 묻는다. “싱아(singer)를 와이푸(wife) 삼는 불명예스러운 짓을 할 건가요?”
그 뒤 이런 현상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리딩 컴파니’(leading company), ‘아웃소싱’(outsourcing·외주)과 같은 단어는 지금도 뉴스에 등장한다. 정보성 광고는 ‘슈페샤루 푸라이수’(special price)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열정적인 국가주의자 아베 전 총리의 취임 연설에는 영어가 꽤 많이 쓰였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그의 정책을 공표하기 위해 ‘타운 미팅’(town meeting)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도 이런 ‘빌려온 말’로 가득 차 있다. 재밌게도 일본어가 영어를 다변화하는 방식을 닮아서, 영어에서 빌려온 말은 일본어와 비슷하다.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볼포인트 펜’(ball point pen)을 ‘볼펜’이라고 부르고, 미디어에 나오는 연기자를 ‘탤런트’라고 부른다. 운전대를 ‘핸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한국 영어가 일제 때 건너왔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영어를 흡수하는 방식을 공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어의 ‘빌려온 말’은 일본어보다는 영어에 더 가까운 편이다. 왜냐하면 한국어는 일본어보다 자음과 모음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일본어는 자음 뒤에 매번 모음이 들어가 영어에서 수입된 단어들이 꽤 길어지게 된다. 결국 언중의 쓰임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어는 짧아진다. 그리하여 ‘애니메이션’은 ‘애니메’가 되고 ‘빌딩’은 ‘비루’가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단어들은 원래의 영어 단어에 가깝다. 미국 악센트 사용하는 제이팝 스타들 어떤 영어 단어들은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기도 한다. 택시(taxi)는 ‘타익시’(우르드어), ‘택시’(말레이어), ‘딕시’(칸토니스어) 그리고 ‘타쿠시’(일본어)가 된다. 파키스탄과 타이에서는 전화를 받을 때 ‘할로’나 ‘헬로’라고 한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도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베팅 숍’(betting shop)이 아닌 ‘버켓 숍’(bucket shop)에서 게임을 한다. ‘세컨드’(second)는 한국에서 ‘정부’(情婦)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맨션’은 단순한 아파트일 뿐이다. 이렇게 아시아는 ‘영어 비슷한 단어들’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톨프리 넘버’(toll free number·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를 ‘프리 다이얼’이라고 하고, 면허증은 있으면서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페이퍼 드라이버’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들은 ‘윈도쇼핑’보다는 ‘아이쇼핑’을 좋아한다.
영어는 어휘로만 아시아 언어를 바꾸지 않는다. 제이팝(일본 대중가요) 스타들은 미국화된 악센트로 노래를 부른다. 말레이시아 항공 조종사들은 기내 방송을 할 때 영국인 동료들의 발음을 흉내내는 듯하다. 말레이시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에프(f)와 브이(v) 발음을 피(p)와 비(b) 발음과 헷갈려 했지만, 지금 말레이시아 귀족층들은 이 둘을 능숙하게 구분할 줄 안다.
번역=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하지만 한국어의 ‘빌려온 말’은 일본어보다는 영어에 더 가까운 편이다. 왜냐하면 한국어는 일본어보다 자음과 모음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일본어는 자음 뒤에 매번 모음이 들어가 영어에서 수입된 단어들이 꽤 길어지게 된다. 결국 언중의 쓰임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어는 짧아진다. 그리하여 ‘애니메이션’은 ‘애니메’가 되고 ‘빌딩’은 ‘비루’가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단어들은 원래의 영어 단어에 가깝다. 미국 악센트 사용하는 제이팝 스타들 어떤 영어 단어들은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기도 한다. 택시(taxi)는 ‘타익시’(우르드어), ‘택시’(말레이어), ‘딕시’(칸토니스어) 그리고 ‘타쿠시’(일본어)가 된다. 파키스탄과 타이에서는 전화를 받을 때 ‘할로’나 ‘헬로’라고 한다.

리처드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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