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과부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한마디로 과부를 찍어내는 틀이랍니다. 옛날에 누군가 만들어낸 모터사이클의 별명입니다. 남편들이 그걸 몰았다 하면 픽픽 죽어나가 부인들이 과부 신세가 됐다는 거지요. 이번호 커버스토리에 찬물을 끼얹는 듯하지만, 모터사이클을 대할 때 저는 그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어릴 적 무지하게 세뇌를 받아서 그럴 겁니다.
그렇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모터사이클은 참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빨갱이는 나쁘다”는 등식과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차도에서 라이더들을 만나면 짜증을 내는 승용차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휘젓고 다니면 짜증 두 배입니다. 오늘도 저는 차를 몰고 오는 강북강변로 출근길에서 모터사이클, 그중에서도 배기량이 적은 작달막한 스쿠터의 질주를 보았습니다. 명백히 불법행위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듯, 도로교통법 제63조(구 58조)가 눈뜨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륜차의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 출입을 금지하는 그 조항은 지난해 1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결정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할 말도 많습니다. 가령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주행을 금지시킨 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 됩니다. 한국과 타이, 베네수엘라 정도입니다.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일본·유럽에선 다 허용합니다. 모터사이클의 사고율은, 프랑스의 경우 고속도로가 국도보다 네 배나 낮다고 합니다. 영국은 세 배입니다. 모터사이클을 모는 이들은 “위험이란 추상적 개념이고, 구체적 통계가 모터사이클의 안전성을 입증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폭주족은 모터사이클 인구의 극히 일부입니다. 폭주족에겐 과부틀이지만, 소박한 라이더들에겐 안전틀이자 절약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쿠터로 출근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모터사이클 권리찾기 운동도 더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게 되겠군요.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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