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개발된 여객기 중 최신 기종인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1만5천km 이상을 주파한다. 에이피 연합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최초의 여객기는 배였다. 비행기는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고, 호수나 바다에서 날아올랐다.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기의 마찰력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0년대만 해도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기술로는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없었다. 1920년대 개발된 가장 큰 여객기인 도르니에 Do-X는 지금으로 치자면 보잉787이나 에어버스380에 이르는 기술적 신기원이었다. 1929년 독일의 도르니에가 개발한 이 비행정은 고급 유람선이나 호텔을 연상케 했다. 길이 40미터 너비 48미터에 이를 정도로 컸다. 하지만 이 비행기도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운항할 뿐 대륙을 건널 엄두를 내진 못했다.
마침내 1930년 도르니에 Do-X는 유럽에서 미국까지 가는 거대한 실험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서양을 논스톱으로 횡단하긴 힘들었다. 도르니에는 먼저 지중해를 건너 서아프리카로 내려갔고, 여기서 다시 남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거기서야 비로소 비행기는 북진해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즈음 프랑스의 건축가 앙리 드프라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대서양 한가운데 비행기가 쉬었다 가는, 물에 뜨는 공항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드프라스는 곧장 공항을 스케치 했다. 가로 230미터 세로 450미터 말발굽 모양의 철제 섬이었다. 대규모의 공기실을 구조화함으로써 ‘철제 공항’을 뜰 수 있게 설계했다.
물론 드프라스의 공항에는 대형 격납고 외에도 승객들이 이용하는 호텔과 고급식당도 있었다. 밤에는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조명이 비쳤으며, 프로펠러를 달아 기류와 해류에 따라 공항이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드프라스의 ‘공상과학적 설계안’은 1929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사실 당시에는 장거리 비행을 위한 정거장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항공유의 저장, 엔진의 성능 등 여러 기술적 난점 때문에 비행기가 장거리를 주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기술 발전으로 백지화됐다. 거추장스런 수상 공항 대신 장거리 비행기가 개발된 것이다. 지금 비행기는 보잉787까지 진보됐다. 210~250명이 타는 보잉787은 중형기종에 가깝다. 하지만 대형기종도 아니면서(일반적으로 비행기가 커야 기름을 많이 실을 수 있으므로 더 멀리 간다) 만만찮은 거리인 1만5750㎞를 주파한다. 현재 세계 최장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여객기는 이보다 앞서 개발된 보잉787-200LR(1만7500㎞)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거리가 약 4만km이므로, 아직 ‘지구 한 바퀴 도는 비행기’는 먼 셈이다.
지금 전세계 여객기 최장거리 노선은 싱가포르항공이 운항하는 싱가포르~뉴욕이다. 2005년 타이항공도 에어버스 340을 투입해 방콕~뉴욕 구간을 연결했으나, 곧이어 싱가포르항공이 나오자 최장거리 주자 자리를 내주었다. 싱가포르~뉴욕 구간에서도 에어버스340이 투입된다. 1만5246km, 19시간 걸리는 아주 긴 논스톱 비행이다. 하지만 하루 내내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라. 바다 한가운데 앙리 드프라스의 공항이 있었다면 차라리 좋지 않았을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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