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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냐 쾌적함이냐

등록 2008-07-02 21:52

배추김치가 포함된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한국 항공사는 김치가 지닌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기내식 포함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배추김치가 포함된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한국 항공사는 김치가 지닌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기내식 포함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대한항공에는 김치가 안 나온다고? ‘제보’를 듣고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김치가 없었던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느끼한 서양음식에 물릴 무렵 가까스로 오른 한국행 비행기에서 먹은 김치는 ‘드디어 고향이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지 않았던가. 김치를 입안에서 오물조물거리면 청량감이 번졌고 그 순간 혀는 이미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대한항공은 김치를 주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소금물에 절여 간을 맞추고 짜디짠 젓갈을 넣고 숙성시킨 ‘배추김치’를 내놓지 않는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설명이다.

“배추김치를 서비스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냄새 때문이에요. 좁은 기내 공간에서 일제히 배추김치를 먹을 경우 냄새가 기내에 밸 우려가 있거든요. 외국에서 출발할 경우 품질 관리하는 데 어려운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을 오가는 외국항공사 거개는 배추김치를 내놓는다. 편의점에서 파는 꼬마김치 형태다.

“외항사와는 다르죠. 외항사는 한국인 손님 비율이 적고, 한국 노선만 운항하는 것이 아니기에 장기적으로 냄새가 밸 우려가 적습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취항 이래 배추김치를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승객 요구 때문에 여러 번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검토 단계에서 포기했다. 단 냄새가 심하지 않는 백김치를 기내식에 포함시켰다. 오이장아치도 먹어봤을 것이다. 기억을 자세히 더듬어 보라. 당신이 탄 대한항공에는 배추김치가 없었다.

1988년 첫 비행기를 띄운 아시아나항공은 이런 대한항공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취항 초기 아시아나 기내식에도 배추김치는 없었다. 인도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 본 적이 있는가. 특유의 향료 냄새가 진동한다. 그게 무서웠을 것이다. 이번엔 아시아나항공 관계자의 말이다.

“승객 요구와 기내의 쾌적함 사이에서 고민했죠. 그러다가 1995년 배추김치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대신 배추김치를 특수 제작했다. 김치가 최대한 쉬지 않게 진공포장법을 이용했으며, 양념은 최소화해 시큼한 냄새를 줄였다. 그러니까 일반 식당에서 나오는 ‘쉬어 터진’ 김치와 달랐다.

기내식은 기본적으로 호텔급 서비스다. 난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마다 닭장에 갇혀 모이를 받아먹는 닭들을 떠올리지만, 음식재료의 신선도나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수준은 저잣거리의 음식점과 다르다. 메이저항공의 경우 이코노미석 기내식 단가는 과일·음료를 빼고도 한끼 2만~3만원에 이르며, 비즈니스석은 4만~5만원 수준이다.

‘음식의 비행’을 방해하는 건 냄새뿐만 아니라 무게도 있다. 인천~마닐라를 운항하는 필리핀항공의 예를 들어보자. 필리핀항공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튜브형 고추장을 이코노미·비즈니스 승객에 모두 제공하는데, 고추장 한 개의 무게가 20g이다. 에어버스340·보잉777등 300석 가량의 항공편에 승객 수대로 고추장을 실을 경우 편도 6㎏, 연간 약 10톤이 된다고 한다. 그럼 자사 비행편 전부에 고추장을 실어야 한다면? 항공사들은 고추장 싣는 데 추가되는 기름값을 계산기에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무거워질수록 항공유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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