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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비행기’는 무서워

등록 2008-06-11 23:20

자리만 넓다면 비행기야말로 하늘 아래 천국일 것이다. 에어버스380 퍼스트클래스의 내부. 신화연합
자리만 넓다면 비행기야말로 하늘 아래 천국일 것이다. 에어버스380 퍼스트클래스의 내부. 신화연합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건강한 사람이 이상하게도 비행기에서 많이 숨져가는 현상에 맨 처음 의문을 품게 된 건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일반석 증후군(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 이 병은 최근에 발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 죽어 나갔다. 어느 순간 다리에 피가 흐르지 않고 결국 혈액이 응고돼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힌다. 사람들은 심정맥혈전증(DVT) 증상으로 하늘에서 급사했던 것이다. 2002년 건설교통부 국정감사에서는 흥미로운 자료가 보고됐다. 1998년 이후 기내 및 공항, 병원에서 숨진 승객 48명 중 심장마비, 심근경색 등 일반석 증후군으로 의심되는 승객이 27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코노미 좌석 간격은 어느 정도 될까. 항공평가기관인 ‘스카이트랙스’는 좌석 간격을 ‘시트 피치’(seat pitch)라고 일컫는데, 이는 한 좌석의 특정 지점에서 바로 뒷좌석의 같은 지점까지의 거리를 이른다. 물론 발을 펼 수 있는 공간(legroom)과는 좀 다르지만, 어찌 됐든 이코노미석의 ‘건강 안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시트 피치가 긴 항공은 33~34인치이고, 짧은 항공은 31~32인치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집이 큰 서양인이 많이 타는 서구 항공사는 시트 피치가 짧고, 동양인이 주고객인 아시아 항공사는 길다. 노스웨스트·유나이티드·케이엘엠·에어프랑스는 31인치(78㎝)이지만, 대한항공은 33인치(83㎝), 아시아나·말레이시아항공은 34인치(86㎝)다.

물론 2~3인치 넓다고 몸이 편한 건 아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널리 알려진 요령은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벌크석’이라 하는 비상구석을 요청하는 방법. 물론 이 자리에 앉으려면 여러 제한이 따른다.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승무원을 도와 승객들의 비상탈출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신체 건장한 남녀여야 하고 어린이·노약자는 안 된다. 영어 사용 능력을 조건으로 거는 항공사도 있다. 그래서 이 자리는 인터넷 발권 때 좌석 지정이 안 된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승무원이 승객의 ‘됨됨이’와 ‘몸집’을 보고 내준다. 보잉747을 탈 경우 기체 뒤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라. 보통 비행기는 3-4-3, 2-5-2의 좌석 배열이다. 한가운데 자리에 배정된 경우는 끔찍하다.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 상태로 가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잉747은 기체 곡선이 크게 휘어져, 뒤편의 창측 자리가 두 자리다. 더욱이 기체의 휘어짐 때문에 창측 자리에는 여분이 많다. 인터넷 사이트 ‘시트구루’(seatguru.com)엔 놀랍게도 항공사별 비행기 보유 현황과 좌석 배치도가 나와 있다. 각 좌석의 장단점까지 기술돼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보잉737의 4A석은 ‘비상구석이라 발 공간이 여유롭지만, 화장실 옆이라 소란스럽다’ 등.

비즈니스석을 타기 전까지 이코노미석이 ‘반인권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비즈니스석에서 ‘다리를 쭉 편 뒤 땅 짚고 헤엄친’ 뒤에야, 비행여행이 이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비행여행의 대중화 시대다. 비행 좌석이 대량공급 되고 대량소비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비행여행이 과잉이라는 생각도 든다. 버스나 기차 등으로 이용 가능한 단거리에도 비행기를 타는 경우도 많다.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를 없애고, 좀 넓은 이코노미로 채운 ‘평등 비행기’가 나오면 어떨까 상상한다. 적어도 무궁화호 기차 정도의 여유만 있더라도 비행여행이 그렇게 숨막히진 않을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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